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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고독과 교류 사이

by maverick8000 2025. 2. 24.

 

 

헨리 소로는 27세에 홀로 월든 호숫가로 떠나 오두막을 짓고 밭을 일구며 2년 2개월을 지낸다.

그는 그때의 사유를 모아 ‘월든’을 썼다. 이 책은 물질문명에서 벗어나 삶의 본질에 집중하며

자연 속에서 사는 소박하고 충만한 삶을 노래한다.

은퇴 후 속세를 떠나 ‘나는 자연인이다’의 주인공을 꿈꿔본 적 있는 남자들의 로망인 삶이다.

하지만 월든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반전이 있다. 사실 그가 살았던 오두막은 깊은 숲속이 아니라,

30분만 걸어도 읍내로 나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는 때때로 읍내로 나가 음식을 사 먹었고,

오두막에 방문하는 가족과 친구들도 만났다.

홀로 아름다운 월든 호수를 바라보며 ‘사유’했지만 ‘사교’도 멈추지 않았단 것이다.

 

‘월든’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어쩌면 고립이 아닌 연결, 고독이 아닌 교류라는 생각이 든다.

‘오고 가고, 맺고 끊는 중용’의 기술을 배우는 것 말이다.

사찰에서의 ‘동안거’나, 성당에서의 ‘피정’은 번잡함에서 벗어나 마음이 차분해질 수 있는

좋은 방편이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건, 우리의 선입견처럼

고독이 절간 같은 환경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도시인의 출퇴근도 성찰의 순례길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외부가 아닌 내면의 소음을 끄는 것이다.

시끄러운 카페나 번잡한 식당에서도 우리는 고독할 수 있다.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오직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먹는 것에 집중해 충만해지는 ‘고독한 미식가’처럼 말이다.

 

바람에도 꼿꼿한 나무는 죽은 나무다.

이어령 선생은 ‘마지막 수업’에서 나무는 끝없이 바람에 흔들리지만 곧 자신만의 중심으로

서 있다고 말한다. 한겨울 파도는 어떤가. 파도의 운동 역시 끝내 수평으로 돌아가기 위한

끝없는 눌림과 풀림의 과정이다.

세상 많은 것은 중심으로 다가서기 전 흔들린다. 월든 호숫가만 정답이 아니다.

흔들리는 내면의 수평을 찾아 지금 이곳에서 고요해지는 방법이 있다.

잠시 휴대폰을 끄고 명상하는 것이다.

 

 

백영옥 소설가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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