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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내 인생 소풍이었지

by maverick8000 2025. 4. 7.

 

어떤 남자와 결혼해야 하느냐에 대한 답을 찾았다.

‘폭싹 속았수다’의 양관식이 같은 사람이다. ‘응답하라 1988’이나 ‘슬기로운 의사 생활’처럼

이 드라마는 판타지물에 가깝다.

하지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건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이상적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짝사랑 전문가였다.

그는 ‘어떤 사람을 아는 사람은 희망 없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뿐’이라고 말했다.

첫사랑 애순이가 자신을 보든 말든 시장에서 대신 “양배추 달아요!”를 외치던 연인 관식이

그런 사람이다.

금명이가 알아주든 말든 “수틀리면 빠꾸! 네 뒤에 나 있어!”를 외치는 아빠 관식도 그렇다.

누군가를 기대 없이 사랑한다는 건 빛과 어둠 모두를 품는다는 뜻이다.

사랑은 소중해서 쉽게 집착과 욕심으로 부패하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문장을 나는 이승우의 소설 ‘사랑의 생애’에서 찾아냈다.

작가는 “진정으로 살지 않는 사람이 삶이 무엇인지 묻고, 참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는 “중요한 건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고 사랑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며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좋은 사랑은 내가 나로 살고, 끝내 서 있을 수 있게 한다.

오십 넘어 모진 풍파 겪고도 애순의 문학소녀 기질이 조금도 구겨지지 않고 잘 보관돼 꽃피워

시집까지 낸 건 모두 햇살 같은 관식의 사랑 덕분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헌신과 배려로 이 순간 간신히 서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에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살았는데!’라는 억울한 희생자인 척하기가 없어서 좋았다.

 

 

아들을 먼저 보내고도 살아내고, 또 살아진 애순이 할머니의 유언 같은 말

“내 인생 소풍이었지. 내 자식들 다 만나고 가는 기가 막힌 소풍”이라는 대사가

그래서 더 마음에 남는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 방언으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이다.

2025년 봄,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백영옥 소설가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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