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의 꽃이 신랑 신부면, 조연급 스타는 주례 선생님이다.
연세 지긋하고 풍채가 좋은가, 콧수염이 있나 없나, 말씀이 너무 길지 않나 차이가 있을 뿐
주례사는 세계 어디를 가도 대동소이 거의 판박이다.
“함께 역경을 이겨내고 검은 머리 백발이 되도록 행복해라.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부부가 되어라.”
그런데 미국 주례만 딱 한 대목 다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돈이 있을 때나 돈이 없을 때나…’가 그것이다.
예식장을 많이 가 봤지만, ‘절약해라. 티끌 모아 태산’ 소리는 들어봤어도,
‘돈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주례 전문 어른을 붙들고 그 얘기를 했더니 화를 버럭 냈다.
“신성한 예식장에서 그런 속된 말을 입에 담을 수가!”
그런가? 돈이 속된 물질인가. 그래서 축의금을 봉투에 넣어서 안 보이게 하는가.
그러고 보니 그 많은 편지봉투가 어디 갔나 했더니 예식장에 다 가 있다.
축의금 봉투는 많을수록 혼주가 좋아한다. 힘들게 자식을 키워낸 감사장이요, 훈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훈장이 뜻밖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당신 아들 장가갈 때 20만 원 넣었는데 우리 딸은 고작 5만 원이냐. 10년간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데!”
“여보슈, 돈 겨우 만 원 넣고 4만 원짜리 식권을 달라는 거요? 사람들이 기본이 좀 있어야지!”
“혼주가 하객한테 그게 할 소리냐. 혼인 잔칫날은 비렁뱅이가 와도 한 상 차려 준다는데!”
“나도 비싼 예식장비에 촬영이다 신부 화장이다, 차 떼고 포 떼고 남는 게 없어요!”
“많이 넣으면 면이 서는 거 누가 몰라? 장사는 안되고 대출이자로 죽을 맛인 거 잘 암시롱!”
실제로 ‘그놈의’ 봉투를 마련치 못해 식장을 못 가고 마음만으로 축복을 보내는 이도 적잖다.
본격적 결혼 시즌이 되면 무더기로 날아오는 고지서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는 사람도 있고,
‘무리해서라도 가야지. 혼주랑 눈도장을 못 찍으면 무슨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이상한 말도 한다.
그림=강철수
어떤 출판 기념 뒤풀이에 축의금 이야기가 꽃을(?) 피워 나도 한마디 거든 적이 있다.
“현금 봉투 대신 우리도 외국처럼 꽃이나 생활용품을 주고받으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중년 부부가 나를 뜨악 쏘아봤다.
말은 안 했지만, ‘그동안 뿌린 씨앗이 얼만데 원금 회수할 때 되니까 초를 치냐’ 두 눈이 소리치고 있었다.
이 참에 이 문제를 AI한테 맡겨 보면 화끈한 답이 나오지 않을까.
이를테면 예식장 접수대 옆에 AI 검색창을 설치, 하객이 신분증을 넣으면 ‘당신의 연봉 및 납세
상태로 보아 50만 원 축의금이 적절합니다.’ ‘당신의 지위나 회사의 재무 상태로 보아 20만 원 되겠습니다.’
‘당신은 은행 빚도 많고 가난하군요. 5000원 넣으세요.’
‘당신은 실직을 당했군요. 그냥 공짜 식사 하고 가세요.’
이러면 만사 공평, 순조롭지 않을까. 그러나 그게 또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야, 이 AI 고철 덩어리야! 김 과장이 20만인데 내가 왜 5000이야?
그리고 나랑 혼주랑 수십 년 인간관계가 있는데 그게 돈으로 환산이 되는 거냐?’
오히려 더 심한 편가르기 분규를 부추길 수 있다.
‘축의금도 개인정보다. 현장에서 확인하지 말고 집에 가서 까 봐라!’ ‘제발 봉투 좀 없애라.
봉투는 강요된 허세다.’ ‘아니다! 오랜 세월 이어온 정마저 매도하나. 언어폭력 이젠 그만!’
혼주와 하객은 물론 많은 법학자까지 곤혹스럽게 만드는 봉투.
너무 지나쳐도 너무 야박해도 안 된다는 것쯤 사람들도 다 안다. 그러나 수십 년간 허례허식을 어쩝시다…,
구호만 요란했지 달라진 게 없다. 우리 사회는 정말 진보하고 있는 것일까.
꽤 오래전, 1970년대 초. 어느 시골 초등학교 여자 선생님이 결혼을 했다. 식장은 학교 교장실.
몇몇 학부모가 호박하고 가지를 싸 들고 왔는데, A 군 어머니는 농사일이 바빠 참석을 못 해 마음에 걸렸다.
누렇게 벼가 익어갈 무렵. 그때는 가정방문이란 게 있어 여선생님이 A 군의 외딴집을 방문했다.
A 군 어머니는 겸사겸사 선생님을 대접한다고 제일 굵은 고구마만 골라 솥에 넣고 불을 지폈다.
여선생은 제일 작은 고구마 한 개를 열무김치 국물과 먹고, 사과 궤짝을 책상 삼아 숙제를 하는
A 군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집을 나섰다.
황금빛 들판을 바라보며 바쁘게 논두렁 길을 걷는데 갑자기 ‘선상님∼’ 하고 불러서 돌아보니
A 군 어머니가 뛰어왔다. 참새 떼가 놀라 포드닥 날아 올랐다.
어머니가 무언가 꼭 쥐여주고 다시 부리나케 달아났다. ‘뭐지?’ 여선생이 가만히 손을 펴 보니
십 원짜리 동전 두 개였다. A 군 어머니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여선생은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손바닥 위의 20원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고 한다.
1970년대 20원이 요즘 가치로 얼마쯤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방신문 기자가 써서 많은 독자의
심금을 울린 ‘내 고향 축의금 사건’이다.
봉투가 얇든 두툼하든 긴 인생에서 보면 모래알만 한 존재들이다.
이웃을 보듬는 애틋한 마음 한 조각이 훨씬 크고 뜨거울 수 있다.
책상을 정리하다가 구석에 누워 있는 빈 봉투를 본다.
그러나 많고 많은 사연을 전해주던 그 옛날의 그 봉투가 아니다.
‘아버님 전상서’ ‘사랑하는 조카들에게’ ‘영철 씨! 앞산에 진달래가 만발했네요’
‘국군장병 오빠 삼촌 읽어주세요’.
가슴이 저미도록 그립다. 깨알 같은 글씨들이.
강철수 만화가, 방송작가
출처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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