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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봉투

by maverick8000 2025. 4. 9.

 

 

결혼식장의 꽃이 신랑 신부면, 조연급 스타는 주례 선생님이다.

연세 지긋하고 풍채가 좋은가, 콧수염이 있나 없나, 말씀이 너무 길지 않나 차이가 있을 뿐

주례사는 세계 어디를 가도 대동소이 거의 판박이다.



“함께 역경을 이겨내고 검은 머리 백발이 되도록 행복해라.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부부가 되어라.”



그런데 미국 주례만 딱 한 대목 다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돈이 있을 때나 돈이 없을 때나…’가 그것이다.



예식장을 많이 가 봤지만, ‘절약해라. 티끌 모아 태산’ 소리는 들어봤어도,

‘돈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주례 전문 어른을 붙들고 그 얘기를 했더니 화를 버럭 냈다.

“신성한 예식장에서 그런 속된 말을 입에 담을 수가!”



그런가? 돈이 속된 물질인가. 그래서 축의금을 봉투에 넣어서 안 보이게 하는가.

그러고 보니 그 많은 편지봉투가 어디 갔나 했더니 예식장에 다 가 있다.

축의금 봉투는 많을수록 혼주가 좋아한다. 힘들게 자식을 키워낸 감사장이요, 훈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훈장이 뜻밖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당신 아들 장가갈 때 20만 원 넣었는데 우리 딸은 고작 5만 원이냐. 10년간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데!”



“여보슈, 돈 겨우 만 원 넣고 4만 원짜리 식권을 달라는 거요? 사람들이 기본이 좀 있어야지!”



“혼주가 하객한테 그게 할 소리냐. 혼인 잔칫날은 비렁뱅이가 와도 한 상 차려 준다는데!”



“나도 비싼 예식장비에 촬영이다 신부 화장이다, 차 떼고 포 떼고 남는 게 없어요!”



“많이 넣으면 면이 서는 거 누가 몰라? 장사는 안되고 대출이자로 죽을 맛인 거 잘 암시롱!”



실제로 ‘그놈의’ 봉투를 마련치 못해 식장을 못 가고 마음만으로 축복을 보내는 이도 적잖다.

본격적 결혼 시즌이 되면 무더기로 날아오는 고지서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는 사람도 있고,

‘무리해서라도 가야지. 혼주랑 눈도장을 못 찍으면 무슨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이상한 말도 한다.

 

그림=강철수



어떤 출판 기념 뒤풀이에 축의금 이야기가 꽃을(?) 피워 나도 한마디 거든 적이 있다.

“현금 봉투 대신 우리도 외국처럼 꽃이나 생활용품을 주고받으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중년 부부가 나를 뜨악 쏘아봤다.

말은 안 했지만, ‘그동안 뿌린 씨앗이 얼만데 원금 회수할 때 되니까 초를 치냐’ 두 눈이 소리치고 있었다.



이 참에 이 문제를 AI한테 맡겨 보면 화끈한 답이 나오지 않을까.

이를테면 예식장 접수대 옆에 AI 검색창을 설치, 하객이 신분증을 넣으면 ‘당신의 연봉 및 납세

상태로 보아 50만 원 축의금이 적절합니다.’ ‘당신의 지위나 회사의 재무 상태로 보아 20만 원 되겠습니다.’

‘당신은 은행 빚도 많고 가난하군요. 5000원 넣으세요.’

‘당신은 실직을 당했군요. 그냥 공짜 식사 하고 가세요.’



이러면 만사 공평, 순조롭지 않을까. 그러나 그게 또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야, 이 AI 고철 덩어리야! 김 과장이 20만인데 내가 왜 5000이야?

그리고 나랑 혼주랑 수십 년 인간관계가 있는데 그게 돈으로 환산이 되는 거냐?’

오히려 더 심한 편가르기 분규를 부추길 수 있다.



‘축의금도 개인정보다. 현장에서 확인하지 말고 집에 가서 까 봐라!’ ‘제발 봉투 좀 없애라.

봉투는 강요된 허세다.’ ‘아니다! 오랜 세월 이어온 정마저 매도하나. 언어폭력 이젠 그만!’



혼주와 하객은 물론 많은 법학자까지 곤혹스럽게 만드는 봉투.

너무 지나쳐도 너무 야박해도 안 된다는 것쯤 사람들도 다 안다. 그러나 수십 년간 허례허식을 어쩝시다…,

구호만 요란했지 달라진 게 없다. 우리 사회는 정말 진보하고 있는 것일까.



꽤 오래전, 1970년대 초. 어느 시골 초등학교 여자 선생님이 결혼을 했다. 식장은 학교 교장실.

몇몇 학부모가 호박하고 가지를 싸 들고 왔는데, A 군 어머니는 농사일이 바빠 참석을 못 해 마음에 걸렸다.

누렇게 벼가 익어갈 무렵. 그때는 가정방문이란 게 있어 여선생님이 A 군의 외딴집을 방문했다.

A 군 어머니는 겸사겸사 선생님을 대접한다고 제일 굵은 고구마만 골라 솥에 넣고 불을 지폈다.

여선생은 제일 작은 고구마 한 개를 열무김치 국물과 먹고, 사과 궤짝을 책상 삼아 숙제를 하는

A 군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집을 나섰다.



황금빛 들판을 바라보며 바쁘게 논두렁 길을 걷는데 갑자기 ‘선상님∼’ 하고 불러서 돌아보니

A 군 어머니가 뛰어왔다. 참새 떼가 놀라 포드닥 날아 올랐다.

어머니가 무언가 꼭 쥐여주고 다시 부리나케 달아났다. ‘뭐지?’ 여선생이 가만히 손을 펴 보니

십 원짜리 동전 두 개였다. A 군 어머니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여선생은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손바닥 위의 20원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고 한다.

1970년대 20원이 요즘 가치로 얼마쯤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방신문 기자가 써서 많은 독자의

심금을 울린 ‘내 고향 축의금 사건’이다.

봉투가 얇든 두툼하든 긴 인생에서 보면 모래알만 한 존재들이다.

이웃을 보듬는 애틋한 마음 한 조각이 훨씬 크고 뜨거울 수 있다.



책상을 정리하다가 구석에 누워 있는 빈 봉투를 본다.

그러나 많고 많은 사연을 전해주던 그 옛날의 그 봉투가 아니다.

‘아버님 전상서’ ‘사랑하는 조카들에게’ ‘영철 씨! 앞산에 진달래가 만발했네요’

‘국군장병 오빠 삼촌 읽어주세요’.

가슴이 저미도록 그립다.   깨알 같은 글씨들이.

 

강철수 만화가, 방송작가

 

 

출처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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