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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춘천 가는 기차

by maverick8000 2025. 4. 17.

 

그즈음 나는 발에 로션도 바를 수 없을 만큼 무기력했다.

설마 하던 취업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작디작은 원룸 안에 몸도 마음도 갇히고 말았다.

주말이면 번듯한 기업에 다니는 선후배들을 만나 진탕 술에 취해 돌아오는 밤이 많았다.

그들의 여름휴가에 맞춰 더 술을 마시고, 알지도 못하는 회사에 대한 불만을 들으며 오지랖 넓은

위로를 하기도 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평일 밤이면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술 약속을 구걸하고 술 한잔 사지 못하는 술자리에서 눈치를 살폈다. 주말의 숙취로 주중을 허비하고,

다시 주말의 술 약속을 기다리는 생활이 몇 년째 반복됐다.

취하지 않은 밤 거울 속의 초라한 사내를 들여다보고, 한껏 취한 밤 한심한 사내를 거울로 들여다보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존재가 한없이 가벼워져 견딜 수 없는 시간이 필연적으로 다가왔다.



급기야 사람들을 피하게 되었다. 볼품없는 인생을 더 이상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즈음부터 나는 술만 취하면 춘천에 갈 거라고 말했다. 조만간 춘천에 다녀올 거라고,

방에 와도 없을 거라고,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언제 가느냐는 물음에는 '곧'이라고만 얼버무렸다.

 



왜 춘천이어야 했는지는 모르겠다. 연고도 아는 사람도 없다.

말 그대로 춘천은 노래에서나 들어봤을 뿐,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취한 밤이면 그렇게 춘천이 가고 싶었다. 발에 로션도 하나 제대로 바르지 못하던 내가

춘천행 기차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방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으면 숨을 죽이고 있었다.

돌아갈 때까지 숨을 죽인 채, 도대체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

창피함에 식은땀이 셔츠를 적셔도 그 좁은 방을 나설 수 없었다. 가끔 내 소설에는 원룸 안에 갇힌

초라한 청년이 나오는데, 그게 바로 나다.

 

 

시간이 흘러 가끔 옛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때 춘천 안 갔었지?" 하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안 갔어요" 하면 될 것을,

아직도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다.

'춘천'이라는 단어가 그 시절을 떠오르게 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숨어 있던 그 좁은 원룸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마음을 들키는 것이 두려웠다.

매일 밤 거울 속의 나에게 발가벗은 마음을 들키는 것 같아 괴로웠다.

 



다행히 이제는 발에 로션을 바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사실 그때도 원룸에는 바를 수 있는 로션이 있었다.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단지 로션을 짜고, 양 손바닥으로 로션을 비벼 발에 바를 힘이 없었을 뿐이다.

말단의 조직까지 구석구석 로션을 바를 힘도, 내팽개쳐진 인생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명절을 보내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가속이 붙은 부모님의 시간에 놀랄 때가 있다.

아울러 그들의 시간이 우리의 시간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나는 요즘에도 가끔 TV를 보며 "춘천에 꼭 가보자"고 말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춘천행 기차에 오르지 못했다.



윤재민 소설가

 

출처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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