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와 적대, 증오와 폭력이 사람들의 마음을 쥐어짜고 있다.
타인을 믿지 않는 이들이 나날이 세를 불리고 앞날의 삶을 어둡게 여기는 이들이 갈수록 증가 중이다.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대인 신뢰도는 2015년 66.2%에서 2024년 55.7%로 떨어졌다.
사회를 떠받치는 민주적 제도에 관한 신뢰도는 더욱 낮다.
정부 신뢰도는 2021년 56%에서 2024년 44%로, 같은 기간 국회 신뢰도는 33.4%에서 24.1%로
추락했다. 이렇듯 신뢰가 무너진 세상에선 갈수록 냉소주의가 고개를 든다.
슬라보예 지젝의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인간사랑 펴냄)에 따르면 냉소주의는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다. 냉소는 단순히 비꼬고 조롱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현실 인식이 비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행동하는 태도다.
"냉소적 주체는 이데올로기적 가면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잘 안다. 그러나 그는 가면을 고집한다."
앎과 행동의 괴리가 냉소주의자의 특징이다. 가령 그는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다는 걸 잘 안다.
그는 입으론 차별이 나쁘다고, 신분·재산·국적·성별·장애와 상관없이 모든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여전히 그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
냉소주의자를 판별할 땐 그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봐야 한다.
그 역시 세상이 별로 살 만하지 않고 사회가 잘못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군가 이를 바로잡으려 할 때
그들은 대안은 없으면서 트집을 걸고 꼬투리를 잡아 비판을 위한 비판만 거듭한다.
망가진 현실을 유지하고 낡은 행동을 지속할 핑계를 꾸준히 찾아내는 까닭이다.
주변에 이런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기운이 쑥 빠진다.
그들은 딴지를 걸고 빈정대면서 진지한 고민을 무시하고 무력감을 퍼뜨려 실천을 방해한다.
"애쓰지 마. 우리가 무얼 바꿀 수 있겠어." 냉소주의자는 더 나은 삶을 향한 용기를 갉아먹고,
더 좋은 세상을 위한 시도를 방해하며, 불의하고 불공정한 권력에 관한 저항을 무력화한다.
때때로 냉소는 유혹의 형태로 나타난다.
냉소주의자는 세상보다 나를 챙기고, 소소한 행복에 몰두하며, 위로와 회복의 서사에 빠지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야말로 가장 큰 거짓이다.
지젝은 냉소에 빠지거나 위로에 지지 말고 차라리 "실패할지도 모를 행동을 감행할 용기"를 품으라고 말한다.
행동을 바꿔 삶을 고치고 실천을 통해 사회를 바꾸지 않는 한, 고통에 찬 현실은 지속된다.
냉소를 멈추고 다른 세상을 이룩할 용기가 현재 우리에겐 필요하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출처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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