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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콩나물시루 안에서

by maverick8000 2025. 4. 30.

 

 

 

빛이 들지 않게 검은 천으로 덮인 시루 속에서 콩나물은 자란다.

햇살도 온기도 없이 어둡기만 한 공간이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찬물을 맞으며 키를 높인다.

사람의 마음에도 그런 구석이 있다. 드러내지 못하고, 숨기고, 외면한 채 가둬 둔 감정들.

말로 다 할 수 없는 슬픔, 표현하지 못한 분노, 속으로 삭이며 넘긴 억울함처럼 밝은 곳에서는

자랄 수 없는 마음들이 있다. 그 감정들은 음지에서만 뿌리를 내린다.



세상은 종종 양지바른 곳에서만 마음이 자라는 것처럼 말한다.

웃음, 성취, 긍정적인 말과 다정한 손길이 마음을 건강하게 키운다고 한다.

이런 경험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자양분이지만 세상은 그 반대의 경험 또한 잊지 않고 안겨준다.

소중한 대상을 잃고 남은 상실의 자리, 눈을 질끈 감게 하는 후회의 순간, 오랜 노력에 반하는

실패 같은 쓰디쓴 경험들이 검은 천이 돼 삶의 빛을 가린다.

밝게 웃는 사람들과 활기찬 세상이 도무지 낯설고 외톨이가 된 것 같은 시간은 유난히도 어둡고

길게 느껴진다. 검은 장막이 걷히고 나서야 알게 된다.

멈춘 듯했던 음지의 시간 속에서도 마음이 자라고 있었다는 것을.

고난을 견디며 길러진 인내,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아픔에서 피어난 공감 그리고 외로움

끝에서 발견한 자신만의 언어는 음지에서 자란 마음의 결실이다.

 



어떤 마음은 약점이나 상처로 굳어지기도 하지만 내면의 근육을 단련시키기도 한다.

삶이 쓰게 느껴질 때면 생각을 달리해본다.

숨을 가다듬고 “나는 지금 콩나물시루 안에 있어. 내 마음은 자라는 중이야” 되뇐다.

머지않아 검은 장막이 걷히면 음지에서 쑥쑥 자라난 마음이 제 모양을 갖추고 더욱 단단하게

삶을 지탱해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양지에서 자란 마음 못지않게 알알이 영근 결실로 피어날 테니.

지금 어둠 속에 있다면 그 마음을 잘 보듬어주자. 조용히 긴 뿌리를 내리며 자라는 중이니까.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출처]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