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이런 내용의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밥을 가족들과 먹지 않고 신문이랑 먹고 있다.’
꼭 나를 두고 하는 소리 같아 뜨끔했다. 사실은 그 시절 꽤 많은 이의 식사 파트너가 신문이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 사람들은 누구랑 밥을 먹고 있을까?
전화기랑 먹고 있다. 밥뿐인가. 햄버거·짬뽕·커피도 휴대전화랑 마시고, 자동차까지 한 손에 그걸 잡고
몰다가 단속에 걸리고는 한다.
부부가 소파에 마주 앉아 정담을 나누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각자 자기 전화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아직 아이들은 없나? 있다, 소파 뒤쪽에서 열나게 게임을 하고 있다.
조용한 낚시터가 왁자지껄, 강태공이 강태공을 족치고 있다.
“당신이 계속 꼼지락대니 고기가 다 도망가잖아! 그거 켜 놓고 안달복달한다고 주가가 뛰냐?
툴툴댄다고 금리가 내려? 당장 던져 버려요 그놈의 전화기!” 그러나 절대로 상전을 물에 던지지 않는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수업 분위기를 바꾸려 문제 하나를 냈다.
“금이나 보석도 아닌데 사람들이 애지중지합니다. 그렇다고 금고에는 절대로 넣어두지 않는 귀중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이 합창을 한다. “스마트폰!” 첨단기기는 아이들이 더 열광한다.
고등학생이 된 친척 여자애가 귤 상자를 안고 놀러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무인도에 표류가 됐는데, 물건을 한 개만 가져갈 수 있다면 너는 뭘 가져갈래” 했더니,
이 아이도 1초 망설임 없이 “스마트폰” 했다.
“섬에 기지국도 없는데 그걸로 뭐하게” 하니까, 자기는 손에 전화기가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차분해진단다.
세상 살면서 불편한 것이 곧 불행이라고, 저보다 나이가 몇 배나 많은 나를 가르쳐주고 갔다.
정말로 불편이 불행일까?
밤에 잠이 안 와 영화 한 편을 봤다.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갱영화였다.
총잡이 브루스는 번개 같은 총 솜씨로 악당들을 무찔러 나가는데, 그만 실수로 갱단한테 잡혔다.
피투성이가 된 주인공을 조롱하며 갱단 두목이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손이 빠르면 뭐해. 총이 없으면 너도 아무것도 아니잖아.”
총 없는 총잡이는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우리 역시 휴대전화 없이 당장 무엇 하나 할 수가 있는가. 곰탕 한 그릇, 피자 한 조각도 기기로
찍어야 먹는 세상. 해외 직구도, 치킨 오토바이도 휴대전화 숫자를 눌러야 온다.
절박한 서민들의 구세주 ‘비대면 대출’이 무엇인가? 휴대전화 얼굴마담을 세워야 돈을 준다는 말이다.
거의 매일 울리는 결혼식, 고별식, 돌잔치 알림 벨은 말할 것도 없고, 빵순이클럽·떡볶이동아리까지
지령(?)을 깜빡 놓치면 큰일 난다. 조직의 쓴맛을 보고 인생의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가야 한다.
첨단기기 없이도 잘만 살던 때가 있었는데, 돌아갈 수 없을까?

그런데 다음 날 피겨스케이팅 금메달을 딴 선수의 어머니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우리 애 카톡이니 게임이니…안 해요. 전혀 못 해요. 연습만 했어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
배가 고프다, 울면서 자던 딸의 모습, 엄마로서 젤 마음 아팠어요.”
운동선수뿐이랴. 의사 판사 요리사 음악가 미술인…지게차 운전기사까지 밤을 꼬박 새우며 게임을 하고
별풍선을 어쨌다 소리,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휴대전화 없이 성공한 후 최신형 휴대전화를 가졌다.
어떤 이는 두 개나 가지고 있단다. 더욱 바빠졌기 때문이다.
그들처럼 성공은 못 했어도 내 휴대전화는 훨씬 더 바쁘다.
영화 속 총잡이가 총을 안고 잠을 자듯 나도 손전화를 머리맡에 두고 잔다. 기상과 동시에 실탄(충전) 확인.
여기저기 습관적인 안부 전화. 안 봐도 그만, 봐도 그만인 메일 주고받기. 등산도 여행도 안 가면서
날씨 정보에 풍랑 예보까지 확인하다 보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금반지, 금목걸이는커녕 지갑에 1달러도 없으면서 환율이 어찌 됐나, 금값이 또 올랐나?
대로변에 싱크홀이 어쨌단다 하면 여기저기 긴급 문자 발송. ‘길 갈 때 좌우 살피면서 다녀라, 죽는다.’
미국 대통령 얼굴이 잠시 TV 화면에 보였을 뿐인데, ‘우리 살림 어떻게 되나’ 땅 꺼지는 한숨을
경제통 친구한테 전송하고 있다. 한국 정치가 싫다면서도 여의도에서 뭐라고 하나 귀를 쫑긋, 안경을 고쳐 쓴다.
한의사가 껄껄 웃으면서 보약을 권했다. 하도 폰을 눌러대 손가락에 문제가 생겼을까?
뜻밖에도 우리 앞 라인 젊은 엄마가 치료법을 알려주었다. 목소리가 유독 큰 그가 중1짜리 아들을 혼내고 있다.
“엄마가 좋은 말 할 때 휴대폰 내놔! 줬다가 뺏기는 누가 줬다가 뺏어. 게임을 하더라도 제 앞가림은
해 가면서 작작하란 말이야 작작!”
나는 그 말을 그대로 애 엄마한테 해주었다. 마음속으로. ‘아주머니도 애 좀 작작 잡으세요!
그리고 문 앞에 피라미드를 쌓는 것도 아니고 아침마다 택배 상자 그게 다 뭡니까.
휴대폰 좀 작작 굴리세요. 작작 좀!’
애 엄마도, 나도, 중1짜리도 결국 ‘작작’이 문제였다.
나는 처음으로 스마트 기기 앞에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미안하다 스마트폰.
그동안 솔직히 너무 혹사시켰다.
이제는 나도 알았다. 너를 잠깐 쉬게 하면 내 눈도 따라 쉬고 머리도 맑아진다는 사실을.’
강철수 만화가/방송작가
출처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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