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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머물고 싶은 곳으로

by maverick8000 2025. 6. 4.

 

 

쪽빛 하늘이 시시각각 밝아오는 이른 새벽, 가장 먼저 깬 새들이 나무의 우듬지로 모여들어

명랑하게 재잘거린다. 비몽사몽간에 새들의 수다를 듣고 있다 보면 세상과 나 사이에 있던

경계가 사라지는 걸 느낀다.

삶이 충만해지는 순간은 또 있다. 풀 내음 짙은 아침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맑은 기운으로

조각도를 들어 형상을 빚어낼 때, 되도록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고 하루 몫의 생을 소진할 때,

가진 결핍과 불편마저 삶을 응원하고 나를 먹여 살릴 때, 시대와 공간을 넘어온 누군가의 생각에

깊이 공감할 때. 그런 순간 삶의 충일감에 휩싸여 살아 있음을 절감한다.



본능이 전부인 3㎏ 내외의 작은 동물에서 의식을 지닌 사회적 동물로 인간은 성장한다.

성장한다는 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에 더해 취향과 개성을 갖고 여러 경로와 방식으로

자아를 구축하고 자신을 명명하는 일이다.

또한 언제 어디서 무엇으로부터 자신이 가장 충만한 존재가 되는지를 깨닫는 일이다.

요동치는 삶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고 조정하려는 시도는 충만한 존재로서 살아가려는

욕망이자 의지이기에, 소멸의 날까지 어디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렸다.



‘지금 나는 내 삶 안에 있는가?’

내 오랜 화두임에도 쉽게 잊히는 이 질문에 대해 일생에 걸쳐 답을 갈구할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진정 귀하게 여기고 가치 있다고 믿는 것들과 오순도순 어울리면서

내면의 속도에 맞춰 흐르는 시간 속에 머물고 싶다. 그 안에서 정금처럼 빛나는 삶을 탐미하고 싶다.

삶의 충만함은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순간을 향유하는 능력의 문제라는 걸 깊이 새겨둬야지.

그리고 나와 세상이 충만해지는 순간들을 일상 가까이 꾸리기 위해 노력해야지.

마음가짐에 따라 머무는 곳이 바뀌고, 관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는 삶의 이치를 기꺼이

실천하겠노라고, 다시금 나와 약속을 한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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