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유학 가기 싫다는 딸과 통화하는 선배를 본 적이 있다.
“평범하게 살고 싶어”를 외치던 딸에게 “평범하게 살라고 유학 보내는 거야.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살기가 쉬운 줄 알아?”라고 답하던 선배의 말이 여전히 기억난다.
아이가 어떻게 자라길 바라냐는 질문에 부모들의 가장 흔한 답은 뭔가 특별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평범하게 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에는 함정이 있다.
‘특별하지 않아도 좋으니 평범하게’ 속에는 아이가 유별나지 않길 바라는 역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가야 할 학교, 받아야 할 연봉, 살아야 할 동네와 아파트가 있다.
상급지, 대장 아파트란 표현은 그 방증이다. 입시, 취업, 결혼, 자가 마련처럼 단계별 과업도 존재한다.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하는 정서 속에는 ‘남들 보기에’란 행간이 있고,
이것이 곧 평범의 기준이 된다.
베트남의 행복지수가 우리보다 높다는 말에 놀랐는데, 눈에 띈 항목에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었다.
공무원 열풍, 의대 광풍, ‘의치한약수’에 가기 위한 직장인의 사표 행렬을 보며 이 땅에서
직업 선택의 자유가 무엇인지 묻게 된다.
평범함이 본래의 말값을 찾으려면 어떤 전환이 필요할까.
이때 안 들리면 보청기를 쓰고, 안 보이면 안경을 바꾸는 노년의 지혜가 유용하다.
대충 살자는 말이 아니다. ‘그럭저럭’의 정신으로 나에게 좀 너그러워지자는 뜻이다.
남들이 말하는 꽃길만 답이 아니다. 비가 내리면 나무가 자라고, 어둠 속에서 별이 보인다는 걸
깨달아야 남과 조금 다른 길, 느린 속도를 견딜 수 있다.
아이들의 정신 건강이 크게 악화됐다는 기사를 읽었다.
SNS의 과도한 사용과 1980년대생 부모들의 과보호를 원인으로 진단한 분석 기사였다.
자꾸 수학 문제를 틀리는 아이를 다그치는 카페 안 엄마가 안타까운 건 결국 엄마가 우는 걸
봤기 때문이다.
내가 본 희망은 그런 엄마를 위로하는 아이의 걱정 어린 얼굴이다.
진심으로 묻고 싶다. 평범과 보통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백영옥 소설가
출처 : 조선일보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띠동갑은 친구고 띠띠동갑은 스승이다 (0) | 2025.06.10 |
---|---|
주는 손이 가진 힘 (2) | 2025.06.05 |
나는 나쁜 정치인이었다 (1) | 2025.06.04 |
김밥 오십 줄 (0) | 2025.06.04 |
머물고 싶은 곳으로 (1) | 2025.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