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눈에 띄는 미남 미녀 연예인이 참 많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후, 우리 곁에 남아 따뜻한 웃음과 눈물을 안겨줄 얼굴이 누구일까 생각하면
전혀 다른 얼굴이 떠오른다. 찰나의 반짝임보다 긴 시간 우리 곁을 지켜온 얼굴들. 이순재, 신구,
김영옥, 나문희, 윤여정 같은 배우 말이다.
그들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소위 ‘만찢남녀’나 전형적 미남 미녀 계보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어쩌면 그들의 시작은 눈에 확 띄는 화려함보다는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평범한 풍경에
가까웠을지 모르겠다. 삶의 희로애락을 담아낸 듯한 얼굴 주름과 자연스러움.
그것은 폭발적인 스타성과는 다른 차원의 ‘아우라’로, 보통 재능을 가진 이가 끝없는 노력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서서히 구축해 나가는 성장 서사에 가깝다.
*만찢남녀 : 만화를 찢고 나올듯이 잘생기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사람. 비현실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을 일컬음
젊은 날 우리는 종종 조급해진다. 빨리 인정받고 남들보다 반짝이고 싶어서 그런다.
‘나는 왜 저들처럼 특별하지 않을까’ ‘언제쯤 내게도 화려한 순간이 올까’ 하는 초조함에 밤잠을 설친다.
그러나 이 거장들의 삶의 궤적은 우리에게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삶이라는 긴 무대에서 중요한 건 어쩌면 폭죽처럼 터지는 화려함이 아니라, 은은하지만 오래도록
꺼지지 않는 등불 같은 꾸준한 노력과 체력이라는 지혜 말이다.
젊은 날의 불안과 방황을 지나온 노년이 건네는 삶의 경륜은 그래서 더 깊은 울림이 있다.
청춘이 이들의 삶에서 배워야 할 건 그 과정의 가치다.
꽃의 화려함은 눈부시게 짧고, 봄의 꽃만큼 늦가을의 단풍도 깊고 아름답다.
뮤지컬을 좋아하지만 요 몇 년 일부러 연극을 많이 봤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못 볼 이들의 공연이 유독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건강 문제로 연극을 전면 취소한 이순재 배우의 무대는 ‘고도를 기다리며’였다.
나는 그의 무대를 ‘다시’ 기다린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의 말을 이 아름다운 노배우에게 남긴다.
“아름다운 젊음은 우연한 자연현상이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예술 작품”이다.
백영옥 소설가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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