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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조선 임금의 휴가

by maverick8000 2025. 8. 25.

 

 

 

유교국 조선의 국왕은, 개념적으로 보자면, 하늘의 뜻에 따라 백성을 다스리는 자여서 하늘이 있고

백성이 있는 한 한시도 부재(不在)할 수 없었다.

하늘의 뜻을 체화한 존재여야 했기 때문에, 즉위 후 숨질 때까지 유교가 구체화한 이념들

즉 인의예지의 규범에서 한 치 어긋남 없이 신하와 백성을 상대해야 했다. 원칙이 그랬다는 의미다.

 

국왕의 휴가, 즉 궁을 떠나 국사를 잊고 쉰다는 건 그 자체로 유교를 부정하고 존재 의의를 저버리는,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전란 등 비상사태가 아닌 한 왕이 궁을 떠나는 건 능행(陵幸)과 원행(園幸) 때에야 가능했다.

능행이란 선대왕이나 왕비의 능에 참배하기 위한 행차이고, 원행은 후궁이나 세자의 무덤을 참배하는 행차다.

두 행차는 전담부서인 전설사(典設司)가 왕의 안전-호위를 위해 병조와 협의해 치르던, 정례적이고

공식적인 행사로, 왕실의 권위와 정통성을 부각하고 효 등 유교적 덕목을 실천하는 의례였다.

종묘와 사직에서 지낸 제사, 군사훈련을 점검하고 사열하는 열무(閱武)와 군사훈련을 겸한 사냥대회인

강무(講武) 역시 국왕의 공식 업무이자 국가의 의례적 전범이었다.

 

드물게 왕이나 왕비가 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전국 유명 온천을 다녀오는 행행(行幸), 즉 온행(溫幸)이

있긴 했다. 행행이란 왕이 궁궐 바깥으로 거둥하는 의례의 통칭이다.

가장 좋은 수레나 가마를 이용했겠지만 여러 날 편치 않은 길을 편치 않은 몸으로, 더러 무더위를 견디며

어가(御駕)에 실려 이동하는 것도, 만만찮은 고역이었을 것이다.

그마저도 유교적 원칙에 벗어난 행행이어서 여간한 신임을 받지 않는 한 신하들의 반발과 눈총을

감수해야 했던, 조선 국왕들이 누린 유일한 휴가였다.

 

출처 : 한국일보

 

아래 그림은 조선 후기 '화성능행도' 8폭 병풍 중의 일부입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휴가를 가는 사람도, 수행하는 사람도...

모두가 고행이었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