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두 개의 알약을 내민다.
빨간 알약은 진실을, 파란 알약은 평온한 무지를 의미했다. 만약 이 알약이 '진실과 무지'가 아니라
'욕망의 조절'과 관련되어 있다면 어떨까?
단순한 공상과학 소설의 상상 같지만, 현대 의학은 이미 그 문턱에 다가서고 있다.
최근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위고비, 마운자로 같은 GLP-1 수용체 작용제는 혈당을 조절하는
수준을 넘어, 욕망 자체를 조절하는 약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약물들은 뇌의 보상회로에 작용해 식욕을 줄일 뿐 아니라, 술이나 담배에 대한 갈망까지
완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GLP-1은 원래 우리 몸에서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배가 부르다"는 신호를 뇌에 전달한다.
그러나 이 약물의 진짜 혁신은 뇌의 보상회로에 미치는 영향이다.
보상회로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우리가 음식, 술, 담배 등에서 쾌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다. 이곳에 개입함으로써, 단순한 식욕 억제를 넘어 '욕망의 강도' 자체를
조율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사실 인간의 욕망에 개입하는 약물은 오래전부터 상상 속에 존재했다.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브레이브 뉴 월드에 등장하는 '소마'는 불안과 고통을 완전히 지워주는 완벽한
행복의 약으로 묘사된다. 영화 이퀼리브리엄 속 프로지움은 감정을 억눌러 전쟁과 혼란을 없애지만,
결국 인간성마저 빼앗는다.
매트릭스의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 역시 결국 "인간의 본질에 개입하는 선택"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공유한다. GLP-1 작용제는 이들처럼 극단적이진 않지만, "인간의 욕망을 의학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가”라는
같은 질문을 현실 속으로 끌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실제로 약을 복용한 환자들은 "음식에 대한 생각이 줄었다", "술이 예전처럼 당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발전이 마냥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욕망은 인간다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때로는 충동적으로 선택하는 경험이 삶의
묘미이기도 하다. 약물이 이런 본능을 지나치게 잠재운다면, 그것은 삶의 풍요로움 일부를 잃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사회적 문제도 따른다. 비싼 약값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향상된 자제력'이라는 이점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이 과연 공정한 사회일까? 새로운 불평등의 씨앗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GLP-1 약물들은 당뇨병과 비만 치료에 주로 사용되고 있으며, 중독 치료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류가 '욕망 조절'이라는 새로운 의학적 가능성 앞에 서 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발전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사회적 합의다. 의학적 필요와 단순한 편의 사이의 경계, 인간의 자유의지와 약물 개입의 균형은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다.
욕망을 조절하는 약물의 등장은 분명 흥미롭다.
하지만 우리가 삼키는 알약은 단순히 몸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경계를 재정의하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결국 그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빨간 알약을 삼킬 것인가, 파란 알약을 삼킬 것인가.
김석재 / 삼성스마트김석재신경과 대표원장·'조종당하는 인간' 저자
출처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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