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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호의와 호구 사이

by maverick8000 2025. 10. 17.

 

 

찜찜한 일이 있었다고 친구는 말했다.

아직 뭔가가 벌어지진 않았는데 벌어지기 직전까지 갔었고, 막상 벌어졌다 해도 그걸 사건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그런 식으로 횡설수설하면서 친구는 덧붙였다.

"이 찜찜함을 왜 내가 감당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친구의 두 아이 중 첫째가 한 선언이 시작이었다. "중학생이 되면 나는 아주 책임감 있는 언니가 될 거야.

그러니까 강아지와 함께 살래." '강아지 사줘'가 아니라 함께 살고 싶다는 첫째의 말이 친구 마음을 움직였다.

둘째가 덩달아 "나도 4학년이니까 고슴도치 사줘"라고 떼를 쓰다 혼난 얘기도 덧붙었다.

친구와 첫째 아이는 나란히 앉아 유기견 입양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친구는 완연한 호의 때문이었고,

아이는 좋아하는 스타가 유기견을 두 마리나 데려다 키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계속 검색해서인지 알고리즘을 타고 끝없이 유기견 관련 정보가 뜨더라고."

포털 사이트 광고, 유튜브 영상, SNS 글과 릴스마다 온통 버려진 개들 이야기와 구조 사연으로 가득했다.

이 많은 걸 다 어쩌나 싶은 괴로운 마음과 우리가 그중 하나를 살릴 수 있다는 기이한 충족감이 함께했다고

친구는 설명했다. "그러다 SNS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한 거야. 사람들이 그러잖아,

보자마자 내 강아지구나 싶은 애가 있다고. 입양 신청을 했더니 바로 연락이 오더라고.

보호가 시급한 아이니 당장 데리러 오라고."



이동하는 동안 친구는 임시 보호 중일 가정집에 쿠키 세트라도 선물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런데 정작 도착한 곳은 건물 한 동을 통째로 쓰고 있는 펫숍이었다. 가게 창고에 철장이 세 줄쯤

놓여 있는데 거기 개들이 잔뜩 있었어. 상상이 가? 가게 앞 쇼윈도에는 손바닥만 한 강아지들이 가득하고,

커튼 너머 뒤쪽에는 쇠창살 안에 몸을 우그린 개들이 가득하다는 게.

 

"저를 속이신 거예요? 숍에서 안 팔려서 큰 개들이 유기견인가요?" 잔뜩 화가 난 친구가 따지는데도

남자는 태연했다. 오해들 많이 하시는데 이 개들은 정말 유기견이라고, 개를 구조한 사람들이 보호할 곳이

없다고 하도 부탁하길래 맡아준 것뿐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유기견 센터마다 개가 넘쳐나는 거 아시잖아요? 거기로 보내면 다 안락사당할 애들이에요."

남자와 다투는 중에도 친구는 철장 안의 개들을 보지 않기 위해 애썼다고 했다.

뭐가 어떻게 됐든 상관없이 간절한 눈빛의 개를 안고 나오게 될까 봐.



"결국 그냥 나왔는데 마음이 미치겠는 거야. 애는 울고불고 난리지, 다른 곳 알아볼 마음은 싹 사라졌지.

연휴 내내 전쟁 같았어." 남자의 말이 정말일 수도 아닐 수도 있으니 더욱 찜찜하다고 친구는 말했다.

그럼 펫숍에서 안 팔린 개들은 어디로 가는 거지? 개를 사고파는 판매업자의 마음과 개를 구조하고 싶어 하는

봉사자의 마음이 공존할 수 있는 건가? 궁금증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나도 더할 나위 없이 찜찜해졌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개를 사는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호의를 이용당하는, 자신이 개를 구조했다고 믿는 선의의 순간을 실컷 기만당하는 사람이 말이다.

속된 말로 호의가 호구가 되는 건 순식간이지만 피해자는 당사자만이 아니다.

갖은 노력으로 동물을 구조했다가 회의에 빠지는 사람, 의심 끝에 상처받고 입양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

끝끝내 버림받는 개들이 전부 피해자가 된다.

호의를 바탕으로 한 소수의 노력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면 인식 개선과 함께 제도가 적극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속았다는 마음에 두고 온 개가 눈에 밟혀 줄곧 괴로웠다는 친구의 얼굴은

새까맣게 어두웠다.



[안보윤 소설가]

 

출처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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