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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햇빛 여울지네

by maverick8000 2025. 11. 12.

 

 

 

짙푸른 녹색 잎이 언저리서부터 바래지더니, 온 산을 노랗고 발갛게 물들였다.

해마다 찾아오는 가을이지만 손바닥보다 작은 단풍잎들이 만들어낸 경관은 처음처럼 새롭고 경이롭다.

봄여름 부지런히 잎을 내어 숲을 가꾸던 나무가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잎을 툭툭 벗어던진다.

먼저 대지로 내려온 나뭇잎들은 꽃도 아닌 것이 미려한 빛깔로 길을 가꾸고, 가지를 붙들고 살랑살랑

몸 흔드는 나뭇잎들은 만나서 반가웠다, 잘 있으라 작별을 고한다.

앙상한 가지가 이리저리 선을 긋는 파란 하늘 아래, 내 발걸음은 바스락 소리를 내며 고요를 깬다.



햇살을 모으고 비바람을 견디며 숲의 어머니가 돼줬던 나무는 300일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그만 쉬어야겠다고 한다.

나무는 기다렸을 것이다. 햇빛 여울지는 가을을. 헐벗은 채 긴 잠을 준비하는 이 시간을.

세 번의 계절을 함께한 숲길을 걸으며 ‘수고했어요’라는 말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가만 보면, 세상 모든 존재가 이렇게 수고하며 자기 생을 산다. 또 그 덕분으로 내가 살아간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으로서 자연으로의 이끌림은 당연하겠지만, 때를 알고 자기 시간을 살아내는

간결한 리듬과 어떤 욕심도 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넉넉한 품위를 닮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노력에 비해 더딘 성취에 안달을 내고,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꿈이 야속해

투덜대기도 한다. 한 번씩 마음이 엉키는 날에는 동이 트는 새벽에 숲을 찾아 나무 아래 섰다.

그들에게도 인내와 기다림이, 생동과 고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아침 햇살이

산등성이에 내려앉았다.



붉게 물든 잎과 앙상한 가지가 숲을 반반씩 채운 이 가을은 나무가 만들어낸 완성의 시간이다.

제 할 일을 끝마치고 평온히 쉬어가는 나무의 계절처럼, 내 인생에도 햇빛 여울지는 시간이 오려나.

나무가 일러준 자연의 오랜 진리, 다시 채우기 위해 비워낸 가을의 여백이 유난히 더 아름답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출처] - 국민일보

 

올 해는 단풍이 바깥 산보다 주택가가 더 예쁘게 든 것 같아요..

 

죽은 회양목 사이에서 피어난 국화가 수줍게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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