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천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몸에 열이 많다. 탕 속에 오래 앉아 있기 힘들다. 땀도 많다.
온천에서 땀을 빼야 할 이유가 없다. 아버지는 온천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엔 주말마다 억지로 온천에 갔다. 일본에 살았던 건 아니다. 부산이라 가능했다.
부산은 온천 도시다. 해운대에는 해수 온천이 있다. 온천장에는 당연히 온천이 있다.
한국 최대 온천탕 ‘허심청’이 있다. 워낙 커서 사람 구경하는 재미는 있었다.
큰 러시아 뱃사람을 보며 놀랐다. 코가 커서는 아니었다.
‘차카게 살자’ 구호가 그려진 형님을 보고 또 놀랐다. 어딜 봐도 착하게 사는 형님은 아니었다.
구호라는 게 그렇다. 못하는 걸 외치는 게 구호다.
‘사람이 먼저다’는 ‘내가 마음만은 착한 놈이다’라는 소리다.
‘공정과 상식’은 ‘내가 좀 거칠어도 정의로운 놈이다’라는 소리다.
형님들의 ‘차카게 살자’는 ‘나는 사시미칼이 차가운 도시 남자, 내 형님에게는 따뜻하겠지’라는 의미다.
요즘은 세상이 다 착하게 살라고 외친다. 정부도 단체도 한국인에게 착해지라고 강요한다.
좀 쉬운 구호다. 정치든 정책이든 실패하면 도덕성 문제로 환원하면 그만이다.
다 우리가 배려도 없고 연대도 하지 않는 차별주의자라 세상이 이 모양인 것이다.
비판하는 순간 욕망에만 충실한 나쁜 놈이 된다. 욕망이 왜 나쁜 건지는 모르겠다만 그렇게 된다.
그러니 주거, 노동, 복지 등 정책에 대한 효과적 논의는 잘 없다. 도덕적 언어만 난사된다.
선생은 적고 도덕 선생은 너무 많다.
우리는 착하지 않다. 진짜 착한 사람은 구호 같은 거 외치지 않는다. 정부나 단체에도 없다.
소셜미디어나 댓글 창에도 없다. 세상이 다 보는 신문에 논쟁적인 칼럼 같은 거 쓰며 벌어먹지도 않는다.
요즘은 죽기 전에 문신을 해볼까 생각 중이다. 세련된 디자인을 고민했는데 ‘차카게 살자’면 될 것 같다.
착해질지는 모르겠다. 목욕탕에서 마주치는 동생들은 착해질 것이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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