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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홍동백서'·'조율이시' 예법?…조선 선비들은 알지도 못했다!

by maverick8000 2025. 12. 10.

 

 

 

Q : 이름난 종가의 60대 종부(宗婦)다. 1년에 지내는 제사가 열 손가락으로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

몸도 마음도 지칠 때가 많다. 하지만 정작 힘든 건 음식 준비보다 ‘논쟁’이다. 제사 때마다 문중 어르신들과

친척들 사이에서 “조율이시(棗栗梨枾)냐, 홍동백서(紅東白西)냐” “바나나는 올려도 되느냐, 안 되느냐”를

두고 한바탕 설전이 벌어진다.

오랜 기간 적지 않은 논란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종부인 내 마음엔 피로감만 더할 뿐이다. 정말 전통적으로,

어떤 과일을 어떻게 차려야 한다는 원칙이 있는 걸까? 있다면 그 기원과 의미는 무엇일까.

 

A : 조율이시, 홍동백서 등이 마치 유서 깊은 전통인 것처럼 말하곤 하지만, 사실 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이야기다. 그럼에도 과일 차리는 비법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뭘까. 제사가 생활의 일부로 보편화되면서,

본질보다 지엽적 문제가 더 논란이 된 탓일 것이다.

그런데 과일 차리는 방법이 실제로 등장한 시기는 놀랍게도 1900년대, 불과 100여 년 전의 일이다.

곽종석(1846~1919)의 ‘면우집(俛宇集)’에는 “대추와 밤이 으뜸이고, 그다음에 배와 감, 시절 과일의

순서”라고 한 1903년의 기록이 있다.

다만, 여기에도 ‘조율이시(대추, 밤, 배, 감)’라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는다. 송내희(1791~1867)의

‘금곡선생문집(錦谷先生文集)’에도 ‘조율시이’란 말은 나오지만, 어떤 순서로 차리라는

구체적인 배열 순서는 없다.

 

 

그러다 탁와(琢窩) 정기연(1877~1952) 선생이 한문을 모르는 아이들과 며느리에게 제사 예법을

가르치고자, 1919년 장기판처럼 생긴 습례국(習禮局)이라는 교육용 놀이기구를 만들었다.

이 놀이기구 사용법을 설명한 책이 ‘습례국도설(習禮局圖設)’인데, 제사상 차리는 법을 그림으로 설명하면서

‘조율시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 책에 따르면, 대추는 으뜸 과일이기에 서쪽에 제일 먼저 차리고 밤, 감, 배 순서로 놓는다.

그다음에 잡과를 차린다고 설명했다. 가장 처음 ‘조율시이’를 제사상 상차림의 원칙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어 1926년 출판업자 김동진이 ‘언문상례(諺文喪禮)’를 편찬했다. 이 책에는 “과일을 올릴 때 홍색은

동쪽에, 백색은 서쪽에, 조과(造菓·과자류)는 가운데에 차린다”라며 그림까지 그려 설명했다.

그러나 과일의 종류와 진열 순서는 물론, 왜 그렇게 놓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이처럼 20세기 초에

들어서야 비로소 과일 차리는 순서에까지 관심을 보인 것은 제사의 형식이 그만큼 치밀해지고

규범화됐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고전에는 제사상에 올리는 과일의 종류나 순서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예법의 근거가 된 중국에서는 지역마다 생산되는 과일이 달랐고, 계절에 따라 구할 수 있는

과일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집안마다 과일 차리는 예법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예법 논란의

여지를 제공했다. 그래서 이를 무마하고자 “집집마다 예법이 다르다”라는 ‘가가례(家家禮)’라는 말이 등장했을 것이다.

 

이 가가례의 의미는 오늘날까지도 전해 내려온다. “물 건너면 제사법이 다르다” “남의 제사에 밤 놔라 배 놔라

하지 마라” 등의 속담이 여기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예법을 다룬 책이 무려 300여 종이 넘지만,

대부분은 이 책을 펼쳐보지도 않는다. 관습이나 어른들께 얻어들은 이야기에 의존하다 보니 형제간 예법도

다를 정도로 집집마다 제각각일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가가례’는 예법을 모르는 자신의 무지를 감추기

위한 일종의 방패였다. “우리 가문은 전통적으로 이렇게 해 왔다”라는 말을 들먹이며 일부러 논쟁을 피한 것이다.

 

조율이시와 같은 사자성어가 오랜 전통처럼 굳어진 데에는 언론 역할도 컸다.

명절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올해 제수(祭需) 비용 OOO원” “제사 어떻게 지내는가?” 같은 기사를 빼놓지 않았다.

이는 한국인에게 제사가 여전히 중요한 문화적 의례임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사의 본질보다는 형식적 외형인 상차림의 모양새만 지나치게 강조한 측면도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은 농산물도 국제 유통망이 활성화된 세계화 시대다. 제철이 아니거나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과일도

쉽게 구할 수 있고, 그 종류도 다양하다. ‘예법도 시대를 따라야 한다’라는 퇴계 이황 선생의 말씀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다양성을 존중하는 오늘날 굳이 과일 종류와 진열 순서에 얽매일 이유는 없다.

 

전통적으로도 제사상에는 ‘잡과(雜果)’라는 항목이 있다. 과일 종류의 다양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제사를 핑계로 신기하고 낯선 과일을 맛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제사를 받는 조상님도 “이런 과일이 다 있구나”라며 기뻐하실지 모를 일이다.

 

 

김시덕 을지대 장례지도학과교수·죽음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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