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음회에 갔다. 위스키 시음회다. 나는 위스키를 잘 모른다. 몇 년 전에는 다들 잘 몰랐다.
싱글 몰트 위스키가 유행하자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이 유행하던 시절과 비슷하다.
그때는 모두가 와인 좀 아는 척을 했다.
시음회에서 배운 것이 많다. 싱글 몰트와 아닌 것 차이는 제조법이다.
한 증류소에서 만들면 싱글 몰트다. 여러 증류소 위스키를 섞으면 블렌디드다.
전자는 개성이 강하다. 후자는 안정적이다. 블렌디드가 싱글 몰트보다 후진 건 아니다.
많은 장인이 이것저것 섞어 보며 설계한 맛이다.
이를테면, 블렌디드는 비틀즈 앨범이다. 싱글 몰트는 각 멤버 솔로 앨범이다.
비틀즈 노래를 들으면 “이건 레논 목소리인가 매카트니인가?” 헷갈릴 때가 있다.
‘매카트니 & 윙스’ 노래를 들으면 헷갈릴 수가 없다. 매카트니 목소리다.
하나의 증류소, 아니 성대에서 나온 싱글 몰트 목소리다.
시음회에는 16년, 20년, 미스터리 위스키가 담긴 잔이 놓여 있었다.
16년을 마셨다. 독했다. 20년을 마셨다. 더 독했다. 미스터리를 마셨다.
마신 자는 인화물로 분류해 항공기 탑승을 거절해야 할 맛이었다.
전문가가 물었다. “어떤 맛이 나죠?”
신년 목표는 아는 척을 덜 하자는 것이다. 요즘은 모두가 아는 척을 한다.
이슈가 생기면 전문가는 증식한다. 정치는 양반이다.
반도체·전기차 등 엔지니어 아니면 말 보태기 힘든 이슈도 전문가가 갑자기 는다.
인공지능 등장 이후 숫자는 더 늘었다. 지식 경쟁의 ‘오픈 북 시험’ 시대다.
나는 아는 척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답했다.
“매워요.”
몇 년 뒤 나는 “후추나 정향의 강한 토스팅 향이 나네요”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은 좀 알면 아는 척을 하고 싶어진다.
그래도 “혀에 닿는 순간 평원이 지진 규모 7.0으로 흔들리며 갈라지듯 열리는 맛” 같은 소리는
하지 않겠다.
아는 척의 발효 도수라도 낮추고 살아야 한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동의 장례식 참여 (1) | 2025.12.24 |
|---|---|
| 소나무가 원뿔 모양인 이유 (1) | 2025.12.24 |
| 역대 최악의 관크 (1) | 2025.12.22 |
| 책갈피에 끼운 달러, 괜찮을까 (0) | 2025.12.22 |
| 실수가 신뢰로 변하는 달력 (1) | 2025.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