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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새해 결심의 공동묘지

by maverick8000 2026. 1. 14.

 

 

 

빨래 건조대를 샀다. 아니다. 자전거를 샀다. 실내 자전거다.

이걸 샀다고 하니 친구가 말했다.   “곧 훌륭한 빨래 건조대가 되겠군.”

훌륭한 건조대가 되기도 힘들다. 내가 산 자전거는 좁은 공간에서 쓸 수 있게 만든 제품이다.

사각형 본체에 안장과 바퀴만 달려 있다. 수건 한 장 널면 끝이다.

 

새해가 오면 항상 뭘 산다. 몇 년 전에는 스마트 체중계를 샀다.

체지방, 근육량 등 다양한 신체 정보를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한 기계다. 블루투스로 스마트폰 앱과

연동해 건강도 관리해 준다. 앱은 쓰지 않은 지 오래됐다. 그걸로 하는 건 체중 측정뿐이다.

요즘 기계는 다 스마트하다. 폰도 스마트하고 체중계도 스마트하다.

내가 스마트하지 않으니 무용지물이다.

 

여러분도 새해가 오면 항상 뭘 산다. 많은 독자는 다이어리를 샀을 것이다.

나름 열심히 기록하며 살아보겠다고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용 스티커도 샀을 것이다.

여러분은 작년에 산 다이어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다이어리는 3월쯤 기능을 멈춘다.

우리의 새해 결심은 ‘교토의정서’의 적이다.

* 교토의정서 : 유엔기후변화협약을 이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 간 이행 협약으로, 교토기후협약이라고도 한다.

 

내 거실은 새해 결심의 노르망디 해변이다.

허벅지에 끼우고 사용하는 근력 기구는 소파 옆에 널브러진 채 신음 중이다.

눕기만 해도 척추를 잡아준다는 자세 교정기는 거실 장 아래 사망한 지 오래다.

올해는 꼭 읽겠다고 다짐하며 산 고전은 거실 곳곳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토머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는 죽는 날까지 상륙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아직도 자전거를 박스에서 꺼내지 않았다. 박스 위에는 빨래가 널려 있다.

수건을 세 장이나 널 수 있다.

“다음 달이면 반값에 당근마켓에 올라와요”라는 소리를 들으니 박스 풀 의욕도 사라졌다.

새해 결심용 물건은 2월에 사야 한다는 교훈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도 박스를 보고 있으면 혈당 스파이크가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체지방도 줄어드는 느낌이다.

역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원효대사는 이 글을 싫어할 것이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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