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에르메스를 바른다. 입에 바른다. 립밤이다. 생일 선물로 받았다.
원래는 프라다 립밤을 썼다. 에르메스를 받으니 손이 안 간다.
명품에도 계급이 있다. 인터넷에는 ‘명품 계급도’라는 도표도 있다.
계급은 일곱 단계다. 프라다는 ‘프리미엄’이다. 네 번째 계급이다.
에르메스는 ‘엑스트라 하이엔드’, 유일한 첫 번째 계급이다.
에르메스 립밤을 바른다고 계급이 상승하진 않는다.
수드라가 입술만 ‘하이엔드(최상위)’ 급으로 보들보들하다고 브라만이 될 리는 없다.
기분만은 브라만이다. 바셀린 바르는 사람을 속으로 내려보게 된다. 사람 참 간사하다.
굳이 사람들 앞에서 립밤을 바르는 일도 늘었다. “어디 거야?”라는 질문을 받으면 약간 신이 난다.
인간 참 간교하다.
립밤은 나의 유일한 에르메스다. 에르메스는 티셔츠 가격이 거의 100만 원이다.
짬뽕 국물이 튀면 나라를 잃은 듯 통곡할 가격이다. 립밤은 영원히 나의 유일한 에르메스로 남을 것이다.
립밤이라도 생산해 줘서 감사하다. 10만 원에 입술이라도 호사를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게 적은 돈이냐고? 아니다. 에르메스 이름 앞에서는 적은 돈이냐고? 압도적으로 그렇다.
에르메스는 2020년 처음으로 화장품을 출시했다. 이유는 뻔하다. 명품 매출 둔화다.
세계 경제는 가망이 없다. 사람들 지갑은 얇아진다. 이런 시절 살아남으려면 수익 다각화가 필요하다.
에르메스와 자존심 경쟁을 하는 루이비통도 2025년 화장품을 출시했다. 여기 립밤은 심지어 20만원대다.
입술이 이탈리아 장인이 가공한 송아지 가죽처럼 보들보들해지나 보다.
호사가 힘든 시절에는 모두 작은 호사를 찾는다. 에르메스 ‘버킨백’은 무리다. 립밤은 가능하다.
두바이 파인 다이닝은 무리다. 두바이쫀득쿠키는 괜찮다.
요즘 매체들은 줄 서서 ‘두쫀쿠’ 사는 자들을 비웃는다.
집단적 소비 광풍이라며 꾸짖는 기사가 한둘이 아니다. 챗GPT가 쓴 것처럼 다 비슷하다.
며칠 전 나는 그 기사들을 읽으며 첫 두쫀쿠를 먹었다. 에르메스 립밤을 바르고 먹었다.
저스트 포 텐미닛, 만수르가 되는 시간이었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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