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키우는 것은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고 몸집이 커져도 행동은 어릴 때와 다를 바 없다. 아무리 영리한 개라 해도
먹을 것 앞에서는 코를 벌름거리며 침을 흘린다. 구르는 공이나 오토바이처럼 빨리 움직이는 것은
모두 쫓아가려고 한다. 늙은 개가 점잖아지고 덜 짖는 것은 기력이나 호기심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개는 어른스러워지지 않는다.
개를 훈련시키면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 똥오줌도 가린다. 주인 옷차림을 보고 산책 나갈 것 같으면
펄쩍펄쩍 뛴다. 외출하는 낌새면 본 척도 하지 않는다. 분명히 제 집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는데
라면 봉지 뜯다가 돌아보면 차렷 자세로 앉아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어떨 때는 하도 신통해서 개가 말을 할 것 같은 착각도 든다. 많은 사람이 이런 이유로 개를 키운다.
개를 가족이라고 하는 건 실제 가족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암부터 치매까지 개도 사람처럼 병을 앓는다. 동물 병원에서 그런 개를 만난 적이 있다.
한쪽 눈이 멀고 털이 절반이나 빠졌으며 피부엔 진물이 나 있었다.
주사를 놓고 약을 먹여야 하는데 개는 약을 모조리 뱉어내고 주인 손을 물어 피를 냈다.
개와 15년을 살았다는 주인은 눈물을 글썽였다. 약을 먹어야 하루라도 더 산다는데 송곳니를 드러내며
반항하는 개가 답답하고 불쌍하다고 했다.
어렸을 때 마당에서 키운 개와 보낸 시간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몇 년 전 약간 충동적으로 강아지를 입양했다.
개는 데려온 첫날부터 나를 사랑해주었고 언제나 한결같이 달려와 품에 안겼다.
그러나 개의 사랑을 받는 대신 포기하고 희생해야 할 것이 많았다. 소파는 발톱에 긁히고 의자들은 이빨에
갉혔으며 오줌에 전 카펫을 들어내니 마루가 썩어 있었다. 여행을 맘대로 갈 수도 없었다.
돈 받고 개를 봐주는 사람에게 며칠 맡기고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다시 만난 개는 집에 오자마자 한참 물을 마셨다. 개를 산책시켜 주지도 않고 집 안에서 오줌 쌀까 봐
물을 거의 주지 않았을 거라는 의심이 들었다. 다시는 그런 곳에 맡기지 않겠다고 개에게 약속했다.
개를 키운다는 것은 언젠가 개와 이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 병원에서 마주치는 늙고 병든 개들을 보면서 나는 겁이 났다. 충분한 마음의 준비 없이 개를 키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와 헤어질 테지만, 개를 키움으로써 그런 관계를 하나 더
늘린 것이 잘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개를 사랑하면 할수록 이별은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개는 주인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 밥과 물을 주고 함께 놀아줄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든 주인이 자신을 버리는 일은 없으리라고 믿는다. 휴가철이면 시골에 유기견이 늘어난다.
휴가지에 개를 버리고 가는 사람이 많다. 자신을 길바닥에 내팽개친 뒤 차를 타고 달아나는 주인을
개는 이해할 수 없다. 개에게 주인과 하는 이별은 오직 어느 한쪽의 죽음뿐이다.
버려진 개들은 새 주인을 만나더라도 사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밤이 되면 개가 다가와 손등을 핥다가 나를 등지고 엎드려 잔다. 등을 보이는 것은 나를 믿는다는 뜻이다.
나는 아주 가끔, 개를 괜히 키우기 시작했나 하다가도 개의 눈과 등을 떠올리고 생각을 고쳐먹는다.
나는 개를 배신할 수 없다. 개를 키운다는 것은 개의 생애 전체를 책임지는 것이다.
개를 위해 노심초사하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개를 돌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라야 개를 키울 수 있다.
개를 키우느라 돈을 썼고 개에게 사랑을 쏟아준 것에 고마워해야 한다는 말 때문에 시끄럽다.
사료 값, 인건비, 치료비, 데려오는 비용, 데려다 주는 비용, 무상으로 양육…. 그 글에서 돈 이야기가 유독
도드라지게 읽혔다. 더구나 개 키우느라 인건비를 썼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돈 주고 누굴 시켜서 개를 키웠다면,
주인이 한 일은 무엇인가. 개를 예뻐하는 것과 개를 키우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
그 개들은 어쩌면 동물원에 갈지도 모른다. 개는 가둬놓고 구경하는 동물이 아니기에 그 개들은 불행하다.
새로 주인을 만나게 해주는 게 최고의 선택이다. 누구의 선물인지 어디서 왔는지 같은 것은 개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개는 오로지 주인만을 바라보는 존재임을 아는 사람이면 된다.
늙고 병들어 주인을 물어도 불쌍해서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면 족한 것이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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