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리오넬 메시(35)를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에서 직접 보면서 신기한 점이 있었다.
메시는 웬만해서는 뛰지 않는다는 것이다. 냇가에 놀러 나온 할머니처럼 천천히 경기장을 노닌다.
공이 넘어오면서 급박하게 공격이 전개될 때도 세상 관계없는 사람처럼 걷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눈에 들어오는 모습이 있었다. 무언가를 찾는 사람처럼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린다.
아르헨티나가 공격하든, 수비하든, ‘도리도리’를 하는가 싶을 정도로 고개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메시가 달린다. 분명히 다를 게 없는 상황인데도 달려온 메시가 공을 받고 누군가에게
넘겨주니 찬스가 생긴다. 아니면 직접 몰고 가서 골을 넣는다. 그렇게 대회 7골 3도움이라는 가공할 만한
공격력을 보였다. 체감상 메시가 달리면 최소한 상대 간담이 서늘할 정도는 되었다. ‘축구의 신’에게만
보이는 길이 있는 듯했다.
메시도 20대 초반에는 부리나케 뛰어다녔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스피드와 현란한 드리블로
상대를 기만했다. 이때도 당연히 막기 어려웠지만, 공을 잡으면 바로 달렸던 덕에 이중 삼중으로 붙으면
어찌어찌 그를 멈춰 세울 수는 있었다. 여러 번 좌절한 메시는 기다림을 배웠다. 넋 놓고 멍 때리는 게
아니라 빠르게 박찰 때를 신경을 곤두세우고 찾는 기다림이다. 걷고 있다고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순식간에 달려와 골을 넣는 지금의 메시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육중하면서도 민첩한 미국 프로농구(NBA)의 지배자 르브론 제임스(38)도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막을 수
없는 선수다. 20대까지는 이를 남용했지만, 지금의 제임스는 필요할 때를 빼고는 뛰지 않는다.
제임스는 “20대보다 지금의 내가 농구를 더 잘한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테니스의 로저 페더러(41·은퇴),
골프의 타이거 우즈(47) 등 달인의 반열에 오른 선수들의 공통점은 느긋해 보일 정도로 침착하게 기회를
노린다는 것이다.
이들의 모습은 치타와 비슷하다. 육식동물 중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치타에게 사냥에서 주어진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만약 실패하면 다음 사냥에 나설 체력이 없어 결국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그래서 먹잇감을 포착하면 웅크리고 있다가 갑자기 달려들어 찰나의 순간에 숨통을 끊는다.
치타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속도가 아닌 기다림이다.
손흥민도 이번 월드컵에서 같은 결의 모습을 보여줬다. 16강 진출이 달린 포르투갈전에서 50m를
달리다가 잠깐 멈추면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상대 수비수 다리 사이로 패스를 보내 황희찬의
역전 골을 도왔다. ESPN은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들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평정심”이라고
손흥민의 인내를 예찬했다.
손흥민은 그 잠깐을 멈춰선 덕분에 한국 축구의 역사를 바꿨다. 손흥민은 2초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이틀, 2개월, 어쩌면 2년일지도 모른다. 각자에게 필요한 기다림의 시간이 다른 탓이다.
지금은 바짝 웅크리고 있더라도 계속 치열하게 준비하며 기다린다면 새해에는 인생에 한 번뿐인
기회를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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