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산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어색한 것이 많다.
그중 하나가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계산할 때 직원한테 “맛있게 드셨어요?”라는 질문을 받는 것이다.
실제로 맛있었다면 아무 문제 없다. 그냥 “네”라고 대답하면 되니까.
곤란한 것은 아쉽게도 입맛에 안 맞았을 경우다. “아니요”라고, 나는 도저히 못 한단 말이다!
그 가게의 발전을 기원한다면 “아니요” 하는 것이 더 친절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미각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눈앞 직원을 실망시키는 것은 나에게도 기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본심이 아닌데…’라는 마음속 응어리를 안은 채 “아, 네…”라고 묘하게 대답하게 되는데,
그런데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상대방이 ‘혹시 맛이 없었나?’ 하고 의심할 것 같아서 요새는 계산할 때
“맛있게~” 소리가 들리는 순간 생각을 잠시 멈추고 기계처럼 “네!”라고 대답한다.
반응이 너무 빨라서 오히려 직원들이 수상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우리 커피점에서는 손님이 계산할 때(우리는 후불제입니다) “맛있게 드셨어요?”라고는
절대로 묻지 않는다. 나는 맛있게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사람 취향은 제각각이다.
손님이 애매한 얼굴로 “아, 네…” 하거나, 질문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무표정한 얼굴로 “네!”라고 외치거나
그런 서로가 슬픈 장면을 마주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손님 중에는 묻지 않았는데도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라고 그냥 인사말 같지 않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말 그대로 맛있게 드셨다면 음식점으로서는 더 기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도 곤란한 일이 생긴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면서 케이크와 음료를 많이,
때로는 절반 이상 남기고 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본심은 무엇일까?
덧붙여서 일본에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때 “하찮은 것입니다만(받아주세요)” 하며 속마음과 다른
말을 하는 풍습이 있는데 (정말 하찮은 것이라면 주지 말아야 한다) 일본인인 나도 이것은
참 이상하다고 느낀다.
또 생각해보니 음식점에 가서 듣는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도 좀 불가사의하다.
요리가 나온 그 시점에는 이미 먹을 것은 완성된 상태고, 내가 맛있게 먹느냐 맛없게 먹느냐는 결국
요리사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오히려 “맛있게 만들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해준다면 시원하겠다.) 아니면 콩국수에 손님이 직접 소금을 적당량 뿌리는 것처럼
각자 노력해서 최대한 맛있게 먹으라는 뜻일까? (솔직히 콩국수는 처음부터 미리 요리사가
생각하는 적당량 소금이 들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이제 내가 음식점을 하는 처지가 되고, 흉내 내서 “맛있게 드세요” 하게 되면서 비로소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손님에게 커피를 내면서 말하는 “맛있게 드세요”는 내가 열심히 내린
커피에 살짝 곁들이는 기도나 소원 같은 것이다. 손님에게 꼭 맛있게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 말을 들은 사람도 맛있게 먹어야 한다고 긴장하면서 먹을 필요는 전혀 없고,
각자의 방법으로 마음 편하게 먹으면 된다.
커피와 요리가 더 맛있어지는 자그마한 주문(呪文) “맛있게 드세요”는 입에 올리는 것도
귀에 들리는 것도 즐겁다. 그 아름다운 말에는 크리스마스 캐럴 같은 기분 좋고 따뜻한 멜로디가
붙어 있는 것 같다.
출처 : 조선일보 (시미즈 히로유키, 아메노히커피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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