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은형
떡국이란 무엇인가. 떡국을 끓이다가 생각했다.
언제부터 한국 사람들은 새해 첫날 떡국을 먹기 시작했는지. 왜 새해 첫날에 떡국을 먹는지.
한국 사람들에게 떡국이란 무엇인지. 냄비 앞에 서서 떡국을 끓이겠다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갑자기 그게 궁금했다.
떡국이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지 몰랐다. 받아먹기만 할 때는 몰랐는데 직접 해보니 그렇더라.
제대로 해 먹자고 작정하니 그렇더라. 나는 제대로 된 떡국을 먹고 싶었다. 여기서 ‘제대로 된’이란
내가 먹어왔던 떡국을 말한다. 떡국을 밖에서 먹은 적이 없고, 집에서 먹은 게 전부이므로.
집 떡국을 재현하기로 했다.
양지머리부터 삶았다. 거품을 수시로 걷었고, 식기 기다렸다 표면에 뜬 기름을 걷어냈다.
커피 필터로 기름을 한 번 더 제거했다. 건져낸 양지는 결 반대 방향으로 썰었다.
양지를 결대로 찢어서 올리는 가정도 있겠지만, ‘씹는 맛’을 중요시하는 우리 집에서는 양지를
찢지 않고 썰었다. 달걀로 황백 지단을 부쳐서 기름을 제거하고 썰었다. 양지, 지단, 대파의
흰 부분에 참기름과 국간장, 맛소금을 넣고 조물조물해 꾸미를 만들었다. 너무 손이 많이 갔다.
떡국이란 무엇인가. 조선 후기에 편찬된 ‘동국세시기’에서 희다고 해서 ‘백탕’, 떡을 넣은 국이라 해서
‘병탕’이라고 하던 떡국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하얘서 기분이 좋았다.
하얘서 첫날에 떡국을 먹는 게 아닐까 싶었다. 쌀로 만들었으니 하얀 것일진대, 사람들은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흰 떡국을 먹고서 쓰이지도 그려지지도 않은 백지상태로 새롭게 시작하라고.
온 가정의 밥상 주술이랄까.
떡국을 보고 있으니 스케치북을 넘기던 순간이 떠올랐다.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은 그만 그리고
새로운 그림을 시작할 수 있었던 순간이. 그 개운함. 다시 그린다고 해서 실력이 갑자기 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마음은 새로 먹을 수 있었다. ‘다시 잘해보자’라며 나를 다독일 수 있었다.
해가 바뀌는 일은 스케치북을 넘기는 그 일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정성으로 끓여야 하나 싶다. 시간을 들여 맑게 육수를 내고, 정갈하게 꾸미를 만드나 싶다.
그렇게 만든 떡국을 먹는 것은 가족들이 가정 밖에서도 정성스러운 대접을 받기 바라는 염원이 담긴
마음임도 알겠더라. 무심히 먹어왔던 가래떡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수명도 늘어나고, 재물도 늘어나라는 바람으로 가래떡을 먹었다는 게 새롭게 다가왔다.
백 년 전만 해도 태어난 아이가 열 살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간절한 바람이었을 거다.
조선 후기 사람인 정약용이 서너 살이 되기 전의 자식을 잃고 애통해하는 글들을 남긴 게 떠올랐다.
6남 3녀를 낳아 4남 2녀를 잃은 그는 “죽은 아이가 산 아이의 두 배다”라고 썼다.
“간과 폐를 칼로 찌르고 쪼개는” 것 같았다며.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에 살아남아 해를 넘기는 일은 경하해야 할 일이었을 것 같다.
새해에도 살아남을 수 있기를, 복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사람들은 떡국을 먹지 않았을까.
영광스럽게 한 살 더 먹은 나이를 세면서. 이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이 낳은 아이들의 아이가
우리라는 걸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하다.
첨세병(添歲餠). 더할 첨, 나이 세, 떡 병.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떡이라는 뜻이다.
떡국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떡국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한 살 더 먹는 게 다행인 시대에 생긴 말일 것이다. 살아남았으니 한 살을 더 먹을 수가 있다고,
정말 다행이라고 옛사람들은 생각했다. 나이를 먹는 것은 살아있는 자의 특권이라며.
떡국이란 무엇인가. 떡국을 먹다가 생각했다. 음식만이 아니다. 떡으로 된 마음이다.
하얀 마음. 정결한 마음. 가족이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 내가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
한 해 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 이 마음들을 생각하며 첫날 떡국을 먹었다.
이 떡국은 첨세병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얼마 있으면 나이가 한두 살씩 줄어든다고 하니까.
올해만 감세병(減歲餠)이라고 불러야 하려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기분이 가뿐해지는 걸 보니 단지 숫자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 또한 마음이다. 나이가 줄어드는 떡국은 올해만 먹을 수 있다.
그래서 특별하다. 떡국을 ‘먹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詩와 글과 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들만큼’ 결혼식 (0) | 2023.01.13 |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0) | 2023.01.13 |
아름다움이 있는 한 절망은 없다 (0) | 2023.01.11 |
행복의 조건 (0) | 2023.01.11 |
가족과 친척에게 ‘더 좋게’ 말해주기 (0) | 2023.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