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정 기자
어제 아침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남성이 올린 “예비 신부가 정장을 입고 신부 입장을 하고 싶다고
한 게 고민”이란 글이 화제였다. 이 남성은 “결혼 준비가 하기 싫다”며 “(신부는) 남혐 같은 건 없는
사람”이라고도 덧붙였다.
단시간에 750여 개 달린 댓글 중 가장 눈에 띈 건 “정장은 일반적이지 않아서 싫다”는 반응이었다.
나는 지난해 결혼을 앞두고 소위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를 준비하면서
우리나라 결혼식에서 ‘일반적’이란 단어가 얼마나 강력하게 적용되는지 체험했다.
가장 먼저 받은 인상은 모든 것이 ‘신부 위주’였다는 것이다. 업체들은 예약명부터 신부 이름으로만
올려두고, 모든 결정을 신부에게 먼저 물었다.
결혼식 메이크업 숍에서 대기하는 신랑들을 구분하기 위해 붙여준 ‘이름표’는 황당했다.
신부 이름표에는 각자 이름이 있었지만, 신랑의 이름표에는 ‘ 신부님 남자 친구’가 적혀 있었다.
대부분 숍에서 쓰이는 방식이라 했다. 아마 한쪽으로만 구분하는 게 편리해서였을 수도 있지만,
신랑을 신부의 ‘1+1′처럼 보는 것만 같아 불편했다. 그날 내 이름을 가슴팍에 단 남편은 대부분의 시간을
멀뚱히 앉아 나를 기다리는 데 써야 했다. 1시간에 걸쳐 꼼꼼히 내 의견을 받아가며 눈·코·입을 만들던
신부 화장과 달리 남편의 화장은 얼굴 톤과 눈매를 좀 건드린 뒤 10분여 만에 끝이 났다.
아무리 ‘결혼식의 꽃이 신부’라지만, 신랑의 취향은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았다.
또 인상적이었던 점은 “요즘 많이들 하시는”이란 말이 마법처럼 쓰인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면 내 취향이 아닌 데다 비싸서 망설이던 선택지가 꼭 해야만 할 것처럼 보이고,
반대로 내 취향이지만 업체의 제시안에 없어 선택지를 쉬이 버리게 됐다. ‘남들만큼’이란 보이지 않는
손이 요리조리 선택을 제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결혼식 입장곡을 정하는 데도 식장 관계자가 “요즘 많이들 하시는 곡”이라며 선곡 리스트를 보냈다.
신부들은 영화 ‘트와일라잇’ OST ‘A thousand years’, 영화 ‘어바웃 타임’ OST ‘How long will I love you’를,
신랑들은 밴드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 등이 인기라고 했다. ‘딴 딴 따다~’로 시작되는
바그너의 ‘결혼의 합창’이 신부 입장곡으로 통일되던 과거에 비하면 다양해진 셈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부는 한껏 여성스러움을, 신랑은 한껏 남성스러움을 자랑하는 곡들이었다.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저 세 곡이 울려퍼지는 결혼식을 몇 번이나 목격했는지 모른다.
남성이 남성다움을 버리고, 여성이 여성다움을 버린다고 성평등 결혼식이 될 리는 없을 것이다.
신랑 또는 신부가 ‘남들만큼’을 원하면 그 또한 존중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개성과 취향에
관계 없이 남들만큼 하다가 결혼 비용만 천정부지로 높아진다. 통계청 조사에서 미혼 10명 중 3명은
결혼하지 않는 이유로 ‘결혼 자금 부족’을 이유로 꼽았다.
우리나라 결혼 문화가 비싼 돈이 들어가는 것에 비해 얼마나 신랑 신부의 취향을 반영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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