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내 친구들은 홍콩에 갔다 와서 홍콩에서 짝퉁 시계를 구매한 경험을 영웅담처럼 풀어놓곤 했다.
한 파키스탄 사람을 따라 낡은 건물에 철제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어떤 외국인 남자가 진열장을 열어
물건을 보여 줬더란다. 그중에 괜찮은 물건이 있어 가격 흥정을 하려고 했더니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노 디스카운트. 보스 킬 미(깎는 건 안 돼. 사장이 날 죽일 거야)."
사실 홍콩까지 갈 필요도 없다. 동대문에 가면 매일 밤 노란 천막이 펼쳐진다.
그곳이 바로 국내 최대의 짝퉁 시장이다. 이곳을 주로 찾고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2030이라고 한다.
현대의 젊은 소비자들은 자신이 직접 짝퉁 상품을 구매하려고 나서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일 수도 있다. 짝퉁 상품은 원래 판매자가 가치가 높은 상품을 카피해 진짜의 가격으로
속여 판매해 엄청난 차익을 취하기 위해 탄생했다. 이것이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짝퉁 시장의 역사다. 그런데 현대엔 오히려 소비자들이 짝퉁 상품이라는 것을 인지하고도 구매를 하고 있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짝퉁의 대상이 되는 상품들은 귀금속이나 사치품, 예술품처럼 그 내재가치가
높은 상품들이다. 이런 상품에 대한 위조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도되었고 반대로 이러한 상품의
구매자인 귀족들은 위조를 구분하고 가치를 판별해낼 감식안을 갖추는 것이 기본적인 소양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설탕, 면화, 차 등과 같은 대중상품의 시대가 열리자 상황은
달라졌다. 대중상품들은 구매자가 감식안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숫자가 많았기 때문에
작정하고 속여서 위조 상품을 팔기가 대단히 쉬웠다. 대중 소비자들도 처음엔 이런 위조
상품을 속아서 구매했지만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면서 믿고 구매할 수 있는 판매자를 찾기 시작했다.
최초의 브랜드가 이렇게 탄생했고, 이후 대량생산 시대가 열리면서 브랜드는 곧 대형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이러한 브랜드를 믿고 구매하게 되면서 위조와 짝퉁의 시대는
막을 내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짝퉁 생산자들은 브랜드 그 자체를 위조하는 방법으로 전환했다.
수공업의 시대에는 위조 상품을 만드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대량생산의 시대에는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량으로 제품을 만드는 특성상 동일한 설비를 갖추고 운영 경험이
있다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특히 현대는 제조업의 오프쇼어링으로 인해 제조 자체를 인건비가
저렴한 제3국에서 하는 게 과거보다 더 쉬워졌다. 이렇게 만든 상품에 브랜드를 위조해서 붙이기만
하면 '짝퉁 상품'이 완성된다. 이러한 짝퉁 상품은 특히 명품 산업에서 기승을 부렸는데 이는
상품이 가진 내재가치보다 브랜드 가치가 압도적으로 높게 매겨지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진짜 명품 대신 짝퉁을 구매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짝퉁의 완성도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상관없는 일이 되었다. 제대로 된 감식안을 가지고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 이상
구분하기가 어려운데 대부분의 경우는 남이 소유하고 있는 상품을 그 정도로 자세히 살펴보지
않기 때문이다. 또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높아지면서 몇 달 치 소득을 아끼면 충분히 명품을
구매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티가 나게 짝퉁으로 의심받을 일도 적다. 여기서 더 나아가 진짜 명품은
구매해서 집에 잘 보관해두고 바깥에 나갈 땐 짝퉁을 들고 가는 경우도 생겼다.
현재 판매되는 다양한 상품들을 잘 생각해보자.
그 상품 간의 내재가치에 과연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까? 소비의 핵심은 상품에서 브랜드로
옮겨 갔으며 이 브랜드를 갖기 위해 그토록 많은 사람들과 기업들이 많은 돈을 쓰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짝퉁을 찾는 소비자의 등장은 현대 소비사회에서 상품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들은 오늘도 브랜드가 가진 상징을 소유한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리기 위해 짝퉁을 찾는다.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출처 : 매경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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