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은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삶에 집착한다. 그게 본능이다.
매미라고 예외가 아니다. 더 이상 날지도 못하고 나무에 매달리지도 못하는 매미는 배를 위로 향하고
땅바닥에 누워 날개를 젓는다. 하늘을 향해 배를 보이고 누웠다는 것은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의미지만 매미의 허망한 날갯짓은 숨이 넘어갈 때까지 계속된다.
허망하면 어떤가, 집착이 생명의 본질인 것을.
심보선 시인의 ‘좋은 일들’은 그러한 매미의 죽음에 관한 시다.
“오늘 내가 한 일 중 좋은 일 하나는
매미 한 마리가 땅바닥에 배를 뒤집은 채
느리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준 일.”
시인은 매미가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생명의 무상함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러나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도 울지는 않았다.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그것 또한 좋은 일 중의 하나.”
슬픈 감정을 절제했다는 말인데 왜 그것이 좋은 일일까.
영혼이 조용히 길을 떠날 수 있도록 하려는 배려였기 때문일까. 모를 일이다.
다소 과장되어 보이지만 매미의 죽음에 관한 시는 인간에 관한 알레고리로 다가온다.
(*알레고리(Allegory) : 의미를 은유적으로 전하는 표현 양식으로 우의·풍유)
인간도 때가 되면 지상에서의 삶을 마무리하려고 하늘 쪽으로 머리를 두르고 눕는다.
그리고 매미의 마지막처럼 본능적으로 생명을 이어가려 한다.
매미나 인간이나 마지막이 허망하긴 마찬가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시인의 말처럼
슬프지만 좋은 일, 아니 당연한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껏 살아온 삶에 경의를 표하고 작별 인사를 하는 우리의 방식이니까.
매미의 날갯짓이 끝나듯 고통스러운 몸부림이 끝나면 우리는 프로이트의 말처럼 리비도,
즉 심리적 에너지를 통해 우리와 연결된 그와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를 애도하기 시작한다.
시인의 말처럼 슬퍼도 눈물이 흐르지 않아야 좋은 일일까. 모를 일이다.
애도의 방식은 저마다 다른 법이니까.
방식이야 어떻든 우리는 “애도한다 따라서 존재한다”, 자크 데리다의 말이다.
출처 : 동아일보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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