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3 아버지의 언어 내 기억의 최대치를 끌어 올려 보았을 때.. 나는 아버지의 무릎에 앉은 기억이 없다. 그 흔한 '아빠'라는 소리 한번을 못해봤다. 아버지는 늘 무서웠다. 눈을 부릅 뜨면 호랑이 눈처럼 보였다. 목상(木商)을 한 아버지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집을 찾았다. 엄마가 연탄불에 석쇠를 얹고 꽁치라도 구우는 날이면 그게 아버지 오는 날이었다. 그날은 계란찜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어쩌다 한번 온 아버지는 씨익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게 전부였다. 아버지가 오는 날은 꽁치라도 먹을 수 있어 좋았지만, 아버지와 나만 겸상을 하고 엄마는 부뚜막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그게 늘 미안했다. 어느날 엄마가 아버지에게 욕설과 함께 뺨을 맞는걸 본 적이 있다. 본처의 아들인 큰 형이 시골에서 올라와 고등학교를 .. 2024. 4. 4. 사랑을 미루지 말자 고수리 에세이스트 ‘잘 다녀왔냐고 인사하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글쓰기 수업에서 어느 학인이 쓴 기억을 읽었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기억이었다. 지병으로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던 아버지가 하루는 집에 돌아온 딸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다녀왔냐.” 무뚝뚝하지만 옅은 미소를 띠며 맞아주던 아버지. 찰나였지만, 그 순간의 눈빛과 표정과 말투는 평생 알고 지낸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이런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했었나 딸은 기쁘고도 슬펐다. 아버지가 아버지다웠던 유일한 순간, 딸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이었다. 헤어진 지 오래되었어도 여전히 그날이 기억난다고,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학인은 썼다. 내 이야기를 찾으려는 사람에게 기억 글쓰기를 권한다. 단 10분만이라도 세상의 스위치를 끄고 자유롭게.. 2023. 2. 6. 혼자 만나고 온 아버지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설 연휴를 앞두고 경기도 봉안당에 모신 아버지를 보고 왔다. 추석과 설, 1년에 겨우 두 번 가는 길인데 ‘어, 그때가 또 왔나?’ 생각하는 걸 보면 불효자임이 분명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엄마와 형, 누나가 단체로 함께했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나면서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큰형, 엄마 그리고 나, 이렇게 셋만 찾아가게 됐다. 이번에도 그렇게 일정을 맞추었는데 큰형 내외가 제주도로 여행을 가고 마침 일산 쪽에 일이 있어 혼자만 가게 됐다. 혼자 가서 마주한 사진 속 아버지는 우물 같았다. 나를 비추고 그와 나 사이의 시간을 투영하는. 환한 얼굴로 제주도에서 말을 타고 계신 모습, 한복을 입고 엄마와 안방 자개장 앞에 앉은 모습, 유독 귀여워하셨던 둘째 손자 원.. 2023.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