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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삶과 여행, 맛집

영주시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by maverick8000 2024. 1. 2.

경북 영주시 문수면에는 무섬마을이라는 조그만 집성촌이 있습니다.

무섬마을이라는 이름은 수도리(水島里)의 한글이름으로 "물섬"이라는 의미입니다.

내성천이 마을 전체를 감싸고 굽이 돌아가는 독특한 형태인데, 이곳에 있는 외나무다리가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여 더욱 유명세를 떨치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 12월 31일 (일) 아침에 예배를 위하여 집을 나서다가 문득 이곳 외나무다리가 떠올랐어요..

오래 전 드라마에서 보았던 그 곳.. 그 외롭고 쓸쓸함이 절절해 보였던 그 외나무다리가 보고싶었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마지막 날.. 그 곳의 외로움과 마주해 보고싶었습니다..

 

때마침 눈이 내리고 있어 살짝 망설여졌지만 이내 덕팔이(제 차량의 애칭)는 고속도로로 들어 섰습니다.

제설차량에서 쏟아내는 염화칼슘은 마치 먼지를 뒤집어 쓰는듯한 불쾌감을 주었지만

가속페달을 힘있게 밟으며 목적지로 나아갑니다..

 

원주, 제천을 지나 단양에 이르니 문득 이곳에 사는 사촌누이가 생각 났습니다.

어릴적 누이가 많이 업어 주었는데 그녀도 벌썩 70대 중반입니다.

나도 누이도 아들, 딸 다들 혼인하였고, 양가 부모도 모두 돌아가셨으니 이제 우리는 부러 시간을 내어

찾지 않는 한에는 누군가 죽어야 산자와 죽은자의 모습으로 마주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니

인생의 허허로움이 깊숙히 들어 왔습니다..

 

영주시 접경지에 이르니 눈이 그치고 약간의 가랑비만 흩뿌리는 날씨로 변했습니다.

느린 속도로 2시간 30분을 달려 온 길..

마침내 무섬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에도 눈이 내렸는지 산에는 눈이 덮여 있지만 내성천 모래톱에는

눈의 흔적이 없더군요..

 

주차장에서 내려 마주한 무섬마을과 내성천의 전경은 참으로 조촐하였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지독한 외로움을 마주하기 위해 찾은 이 곳의 풍광은 그런 기대와는 달리

그저 초라함 뿐이었습니다.

 

 

 

 

 

 

 

폭 50cm 정도의 이 허약한 외나무 다리는 그리 길지 않지만 균형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 건너기는

조금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리를 건너면 집성촌 마을이 있는데, 각 각의 집 마다 고유의 이름이 붙여져 있습니다.

안동 하회마을과 다소 유사한 부분도 있지만 규모면에서는 비교도 되지 많을만큼 소규모입니다.

 

 

 

 

 

한바퀴 돌아봐야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마을...

이곳까지 열심히 달려 온 시간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 제방도로에 언밸런스하게 꼽힌 팻말에는 시(詩)가 적혀 있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시인 조지훈의 처가(妻家) 앞 마당에는 시인의 시가 적인 커다란 시비가 서 있었습니다.

 

 

 

 

이 마을을 모티브로 한 시라고 합니다.

 

 

별리 / 조지훈

푸른 기와 이끼 낀 지붕 너머로
나즉히 흰구름은 피었다 지고
두리기둥 난간에 반만 숨은 색시의
초록 저고리 당홍치마 자락에
말 없는 슬픔이 쌓여오느니ㅡㅡ

십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가는데
밟고 간 자취는 바람이 밀어 가고

방울 소리만 아련히
끊질 듯 끊질 듯 고운 뫼아리

발 돋우고 눈 들어 아득한 연봉을 바라보나
이미 어진 선비의 그림자는 없어......
자주 고름에 소리 없이 맺히는 이슬 방울

이제 임이 가시고 가을이 오면
원앙침 비인 자리를 무엇으로 가리울꼬

꾀꼬리 노래하던 실버들 가지
꺾어서 채찍 삼고 가옵신 임아......

 

 

트래킹을 위해 설치된 잔도를 따라 걸으면 내성천의 모래톱이 제법 쓸쓸함을 자아 냅니다.

 

 

 

 

고독을 마주하기에는 다소 부족했지만, 오는 시간과 가는 시간 그리고 돌아가서 혼자 기울일

술잔을 생각하면 그리 부족한 여행은 아니었다 자위하면서 발길을 돌립니다.

 

오후 3시, 하루 내 굶었음을 알리는 배꼽시계..

하지만 예정없이 떠난 당일치기 여행임을 고려할 때 허기는 그리 중요치 않아 부석사로 향했습니다.

 

 

 

 

 

 

교회를 가려고 나섰던 것이 뜻하지 않게 신라시대 천년 고찰에서 하루를 마무리 하게되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어느덧 소백산으로 해가 지는군요..

 

 

 

 

이렇게 마무리 한 한 해의 마지막 날..

애초 기대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나름 많은 외로움을 선사 받은 시간이라 기뻤습니다..

 

 

 

 

아래 사진은 드라마에서 나온 무섬마을 외나무다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