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것은 / 조병화
늙는다는 것은 버리며 사는 것이려니
늙는다는 것은 나누며 사는 것이려니
늙는다는 것은 물러나며 사는 것이려니
늙는다는 것은 물려주며 사는 것이려니
아, 늙는다는 것은 포기하며 사는 것이려니
초월하며 사는 것이려니
비어주며 사는 것이려니
매일이 그러하길
매일매일이 그러하길
남은 날 남은 날까지 그러하길
생각하며 다짐하며 사는 요즘
아, 늙는다는 것은
혼자 남아가길 사는 것이려니
=넘을 수 없는 세월 (동문선, 2005)
늙는다는 것은 / 조병화
대수롭지 않은 말을 하다가도
어느 말 한마디에 걸려 눈물이 나서
말을 이어가지 못할 때가 많아진다
혼자서 책을 읽다가도
어느 글, 어느 장면, 어느 말에 후끈 달아서
눈물로 책을 놓을 때가 많아진다
가족들하고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어느 화면, 그 상황, 그 말에 말려들어
가족 몰래 눈물을 찔끔거릴 때가 많아진다
길을 가다가도, 그 장면, 그 상황, 그 말이
머리에 떠오르면 부질없이
눈물이 고여 길을 멈출 때가 많아진다.
웬일일까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인데
밥을 먹다가도
이야기를 하다가도
단상에서 강연을 하다가도
애국가를 부르다가도
늙는다는 것은 이러한 것이런가
이렇게 연해져서야
아, 내겐 느끼는 것이 모두 눈물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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