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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엘레지의 여왕

by maverick8000 2025. 3. 7.

 

 

 

 

1964년 스물세 살이던 가수 이미자가 음반 ‘동백아가씨’를 냈다.

이 음반은 25만장이 팔리면서 35주 차트 1위를 기록한다. 시대의 아이콘이 된 젊은 가수의

청춘을 다룬 전기 영화가 제작된다.

‘자유부인’을 만든 당대 거장 한형모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최고의 여배우 남정임이 주연을 맡은

‘엘레지의 여왕’(1967)이 그것이다. 지금으로 비유하면 ‘블랙핑크’의 전기 영화나 마찬가지다.

이미자는 영화 첫 장면에 직접 출연해 주제곡인 엘레지의 여왕을 부른다.

‘엘레지’(elegy)는 슬프고 애절한 노래라는 뜻으로, 낭랑하면서도 구슬픈 이미자의 목소리에

딱 들어맞았다. 이후 엘레지의 여왕은 이미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수식어가 됐다.



노래는 한 시대의 정서를 대변한다.

일제강점기의 설움, 한국전쟁의 비극 속에 우리를 위로한 것은 대중가요였다.

이미자의 노래도 이런 연장선에 있다. 단순한 유행가를 넘어 삶의 희로애락과 한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았다. 그는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해 ‘여자의 일생’ ‘섬마을 선생님’

‘여로’ 등 2500곡이 넘는 노래를 냈다.

‘동백아가씨’ ‘기러기 아빠’ ‘섬마을 선생님’ 등이 잇달아 금지곡으로 묶이는 순탄하지 않은

시기도 있었다. 1973년 베트남 주둔 한국군 위문 공연, 2013년 파독 광부·간호사 독일 위문 공연에

이어 2022년엔 평양에서 단독 콘서트도 가졌다.

이런 공로로 2023년 대중음악인으로는 처음이자 유일하게 금관문화훈장을 받았지만

늘 “노래에 있어서는 항상 부족한 것 같다”며 자신을 낮췄다.



올해 84세, 우리 역사의 굵직한 순간을 함께한 그가 무대에서의 작별을 고했다.

다음 달 데뷔 66주년 고별무대를 끝으로 더 이상 무대에 서지 않겠다고 5일 밝혔다.

새 음반 발매도 하지 않겠단다. 이제는 마무리할 때라고 했다.

자신이 부르는 노래가 트로트가 아니라 전통가요임을 강조해온 그는 서구풍의 흥겨운 노래에

전통가요가 묻히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미자의 시대, 그를 기억하는 세대가 저물고 있다.



한승주 논설위원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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