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이 세상에 올 때는 여섯 형제 중 막내로 왔고,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다섯 번째로 떠났다. 그 여섯 명 중 단 한 분 아직 건강한 우리 이모는 1942년생이다.
이모는 평생 독신으로 춘천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했다.
나는 엄마가 보고 싶어지면 이모에게 전화를 거는데, 이모는 전화를 거의 받지 않는다.
어쩌다 전화를 받으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나 화투 안 쳐”이다.
옆에서 착착 화투장 치는 소리가 다 들리는데 이모는 화투를 안 친다고 말한다.
이모를 만나러 춘천에 가면 우리는 막국수를 먹고 차를 마시러 간다.
이모는 같이 화투 치는 멤버들 욕을 쉴 새 없이 한다. 잘 들어보면 대부분 옆에서 훈수 두는
사람들 욕이다. 그리고 이모는 바빠진다. 또 화투 치러 가야 하므로 우리는 곧바로 헤어진다.
언젠가는 화투 멤버 중 이모와 싸웠다는 두 분을 만나 점심을 사드린 적도 있다.
이모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을 달라고 전화번호도 교환했다. 매일 아침 이모 집에 찾아오는
생활지도사가 있지만 그건 집에 있을 때고, 화투 치는 동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화투 멤버들이
이모를 도와줄 수 있을 테니까.
우리 엄마는 건전하게 살았다. 집안일을 하다가 시간이 나면 신문을 소리 내어 읽고 밤에는
저녁 뉴스를 보다가 잠들었다.
나랑 영화도 자주 보러 다녔는데 엄마와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미나리’였다.
엄마는 화투도 안 치고 싸움도 안 하고 살았는데, 왜 그렇게 아프다가 일찍 돌아가셨는지.
엄마와 같은 집에 살았기에 엄마의 흔적이 너무 많다.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걸 살아 계실 때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이모는 엄마가 보고 싶기는 한 걸까. 화투 때문인지 팔십이 넘은 이모는 아직도 씩씩하고 건강하다.
화투도 치고 싸움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의 싸움을 조정하기도 하는 우리 이모.
이모에게는 비록 생활비가 줄더라도 화투 치는 데 드는 돈은 일종의 생존비용 아닐까.
3월인데 눈이 펑펑 내린다. 엄마가 아플 때도 눈이 많이 내렸다.
엄마가 눈을 보면서 눈이 펑펑 내리는 날 가겠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엄마가 보고 싶다.
강영숙 소설가
출처 : 세계일보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술을 즐기는 가장 재밌는 방법 (1) | 2025.03.07 |
---|---|
제일 비싼 칼국수 (0) | 2025.03.07 |
엘레지의 여왕 (3) | 2025.03.07 |
2D로 보이는 세상 (0) | 2025.03.06 |
스타벅스와 모비딕 (2) | 2025.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