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칼국수를 팔았다. 흔쾌히 이름을 빌려줄 마음이 있었는데, 큰누나의 이름으로
분식집 이름을 지었다. 분식집은 시장 제일 안쪽, 통닭집과 대각선으로 마주한 자리에 있었다.
같은 학교를 다녔던 통닭집 딸은 시장에서 마주칠 때면 빌린 돈을 떼먹은 사람처럼 도망을 다녔다.
엄마의 분식집 바로 맞은편과 그 옆에도 김밥과 국수를 파는 가게가 두 군데나 더 있었다.
엄마는 길게 이어 붙인 테이블 한편에서 반죽을 뭉치고 누르며 칼국수를 준비했다.
밀가루를 흩뿌린 테이블에 뭉친 반죽을 내리치며 찰기를 만들었다. 내리치고 또 내리칠 때마다
폴폴 밀가루 먼지가 날렸다. 얼굴에 밀가루 자국을 몇 줄 만들고 나면 기다란 홍두깨로 반죽을 밀어
어르고 달랬다. 이내 송송 썰어내는 면발을 보면 엄마는 여느 수타 전문가보다도 멋져 보였다.
이미 그 맛을 아는 나는 '한 그릇 달라고 할까?'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굳이 라면을 끓여 달라고 한 것은 더 쌌기 때문이었다.
"더 좋은 걸 먹지" 하다가도 금세 뚝딱 끓여주는 엄마의 라면이 맛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칼국수를 끓여 달라고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집으로 돌아온 엄마가 밤마다
어깨가 아파 시름시름 앓다 잠드는 것을 목격하면서부터였다.
칼국수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분식집에서 제일 비쌌다.
그때 가격으로 300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옆에 슈퍼에서 사 와서 끓여주는 라면은 2000원이었다.
나는 매일 학원을 마치고 분식집으로 갔다. 입구에서 마주친 통닭집 딸은 늘 도망을 다녔다.
빌린 돈은 갚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할 겨를이 없었다. 시장에서 마주친 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할 겨를도 물론 없었다.
가게의 마감 청소를 도와주고 받는 돈이 1000원이었다. 통장을 만들어 달라고 졸라 매일 받은
1000원을 꼬박꼬박 모았다. 쉽게 돈이 불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칼국수의 위력을 느꼈다.
아무리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해도 제일 비싼 칼국수를, 그것도 매번 공짜로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매일 밤 어깨가 아파서 잠 못 자는 사람을 뻔히 보면서도 그럴 수는 없었다.
열쇠를 잃어버려 엄마가 학교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문을 잠그고 분식집에 가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엄마 열쇠가 없다고, 엄마는 수업 중인 교실 창문에 매달려 간신히 불러낸
아들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이렇게 입고 와서 우리 아들 창피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
엄마는 밀가루 자국이 묻다 못해 딱딱하게 굳은, 그마저도 누나들이 입다가 만 파란 운동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날 뒤돌아서 걸어가던 엄마의 뒷모습은 각인되어 버렸다.
때로 어떤 모습들은 보는 순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임을 직감할 때가 있다.
그날의 내 마음은 무언가 엄마를 내버려두었다는 느낌이었다.
얼마 전 엄마는 내게 "엄마 강하잖아"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여전히 내가 엄마를
내버려두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엄마는 언제까지 강한 척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나도 그 답을 알 수는 없다.
[윤재민 소설가]
출처 : 매일경제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루엣 / 허충순 (0) | 2025.03.10 |
---|---|
예술을 즐기는 가장 재밌는 방법 (1) | 2025.03.07 |
3월의 눈 (0) | 2025.03.07 |
엘레지의 여왕 (3) | 2025.03.07 |
2D로 보이는 세상 (0) | 2025.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