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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빌린 책 속의 연애편지

by maverick8000 2026. 1. 5.

 

 

아침의 도서관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책으로 가득한 성으로 걸어 들어갈 때, 오늘은 또 어떤 운명이 날 기다릴까

하는 기대로 마음이 부푼다.

빌리고 싶은 책은 한두 권 정해 가지만, 서가를 걷다 보면 꼭 예기치 못한 만남이 성사되고는 한다.

어, 이 제목 흥미롭네. 이 작가는 처음 보네, 하고 펼쳤다가 자석처럼 그 책이 마음에 붙는다.

그런데 그날 내 마음에 붙은 건 책이 아니라 편지였다.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에게 띄운 연애편지.

 

 

새해에 빌려 읽고 싶은 책은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였다.

문학실로 들어가 세계 문학 전집을 모아둔 책꽂이에서 책을 찾는데, 그 옆에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책인데, 희곡?

“당신이 이 시간에 이런 동네를 돌아다니는 이유는 당신이 갖고 있지 않은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난 그걸 당신에게 제공해 줄 수 있지요.”

이런 첫 문장이라니. 맘에 들어.

휘리릭 넘기는데 책 중앙에 낯선 편지가 끼어 있었다. 저런, 누가 잊고 책을 반납했구나.

여러분이라면 이 편지, 어떻게 할까? 읽을까, 버릴까, 태울까.

 

나는 읽었다.

‘내리막길을 씩씩하게 우다다 뛰어서 너에게 안긴 날의 모습을 네가 기억하는 것처럼

나도 그 순간의 너를 봤고, 기억하고 있어.’

아, 내게도 이런 순간이 있었지. 타인의 편지가 내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하여 전율했다.

예술이란 이런 것일까? 결국 예정에 없던 이 책을 빌렸다. 편지와 함께.

 

책 속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추억이란 사람이 발가벗겨졌을 때조차 꼭 지니는 비밀 무기랍니다.’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한 기억, 수십 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추억, 인간은 그런 것들로 산다.

 

혹시 이 아름다운 편지의 주인이 이 글을 본다면, 제게 연락해 주세요.

저는 태울 수도, 버릴 수도 없었습니다. 당신이 나타날 때까지 간직하겠습니다.

 

 

장수윤 / 작가, 번역가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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