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부를 구웠다. 하얀 손두부를 한입에 쏙 들어가는 작은 네모 크기로 잘랐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오일을 두르고, 작은 네모 두부를 여러 개 올려두었다.
두부는 거의 정사각형에 가깝다. 마음이 분주한 오늘, 두부의 모든 면을 잘 굽기 위해 굴렸다.
그렇게 두부를 굴리다 보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구워진 면은 노릇노릇한 색으로 변하고, 아직 구워지지 않은 면은 여전히 새하얗다.
구워진 단면이 생기니 하얀 면이 더 잘 보였다. 정사각형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닿는 면을 바꿔줬다.
작은 두부 조각들. 프라이팬 위에서 노릇노릇 구워지는데, 겉면이 단단해진 두부는
이전보단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한여진 시인은 한 시에서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고 썼다.
두부를 굽다 보니 한여진 시인의 시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두부를 굽는 시간이 금방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두부를 굽다 보면 어느새 겨울이 온다는 것.
잊히지 않는 어떤 시간이나 슬픔, 미워하고 사랑하던 마음을 구워 단단한 것으로 만들다 보면
겨울이라는 시간이 찾아온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다가오는 것이 봄이 아니라, 겨울이라는 것이 이 시의 묘미다. 시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모든 것이 끝나도/ 어떤 마음은 계속 깊어진다”.
두부를 굽는 행위처럼 슬픔이나 감정을 모두 다루어보고 끝을 맺으려고 해도, 그렇게 온통 애를 써봐도
결국엔 끝나지 않는 마음이란 것이 있다.
나는 잘 구워진 두부 위에 간장 소스를 입혀 식탁 위에 두었다.
분주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허둥지둥 시간의 모서리를 붙잡고 흔들리고 있을 때, 커다란 물방울 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사방을 둘러봐도 빠져나갈 곳이 없는 것 같을 때, 그럴 때 우리에겐 두부를 굽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 면 한 면 단단해지는 두부를 구우며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단단하게 해볼 시간이 필요하다.
다 구워도 남는 부서짐처럼, 여전히 끝나지 않는 마음이 있다 해도.
안미옥 시인
[출처] - 국민일보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읽던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서로를 미워하고 있었고
그것이 이 책의 유일한 결말은 아니니까
가장 많은 미움을 샀던 인물처럼
나는 징검다리를 건넜다
개울에 빠져 죽었다던 그와는 달리
반대편에 잘 도착했는데
돌아보니 사방이 꽁꽁 얼어 있었고
그애는 여름에 죽었겠구나
죽은 이를 미워하던 사람들이
모여 흐르는 땀을 연신 닦다가
미워하던 마음이 사라진
텅 빈 구멍을 들여다본다
그것은 검고 아득해서
바닥이 보이지 않고
돌멩이를 던져볼까
아서라, 죽은 이는 다시 부르는 게 아니야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 찰나에도
두부는 아주 평화롭게 구워진다
이것은 소설일까 아닐까
고개를 들면 온통 하얀 창밖과
하얗게 뒤덮인 사람들이 오고가는 풍경
모든 것이 끝나도
어떤 마음은 계속 깊어진다
-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 한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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