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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엠앤엠<초콜릿> 좀 구해주세요, 변호사님"

by maverick8000 2026. 1. 29.

 

 

“변호사님이 꼭 해주셔야 할 일이 있어요.”

 

접견실 유리벽 너머로 의뢰인이 비장하게 말했다. 나도 덩달아 비장해진다.

수용된 의뢰인이 하는 부탁은 보통 비슷비슷하다. 가족이나 여자 친구 누구에게 무슨 말을

전해달라든가, 자기 휴대폰이나 노트북이 어디에 있으니 거기서 무슨 증거를 찾아봐 달라든가,

무슨 서면을 내달라든가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의뢰인의 이번 부탁은 달랐다. 그는 덩치가 무척 큰 30대 남성이다.

 

“엠앤엠(M&M) 초콜릿 있잖아요. 빨간색 포장지에 들어 있는 거. 그것 좀 갖다주세요.”

 

“그걸 어떻게 드려요?”

 

변호인 접견은 일반인 접견보다는 폭넓은 자유가 허락된다. 유리벽 윗 공간을 통해 소송서류를

주고받을 수 있고, 감시하거나 녹음하는 사람도 없다. 접견을 끝내고 의뢰인과 함께 나올 때는

악수 정도의 가벼운 접촉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허용되진 않는다.

구치소에 들어올 때는 휴대폰·노트북 등 전자기기를 제출해야 하고, 검색대를 통과한다.

서류는 가져올 수 있지만, 철침이나 핀이 꽂혀 있으면 일일이 빼야 하고, 어떤 내용의 서류인지 적어서

제출한 후 교도관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

 

“가방에 넣어서 가지고 와서, 서류 밑에 숨겨 건네주시면 안 돼요? 엠앤엠이 너무너무 먹고 싶어서 그래요.”

“매점 있잖아요.”

“거긴 양파링하고 다이제, 오예스밖에 없단 말이에요. 가짜 초콜릿 맛 나서 싫어요.”

 

꾸며낸 얘기 같겠지만, 100% 실화다. 심지어 이런 적이 처음도 아니다.

잡지, 패션 안경, 동전 파스, 두툼한 수면 양말, 면 마스크…. 지금까지 부탁받아 본 것들의 목록이다.

물론 한 번도 응했던 적은 없다. 아무리 비싼 수임료를 받아도, 내 변호사 자격은 그것보다 소중하므로.

 

구치소 내부에서도 필수 물품은 반입이 허용되므로 넣어줄 수 있다. 러닝셔츠, 양말, 속옷, 안경 등이다.

다만 개수와 종류가 제한된다. 가장 폭넓게 허용되는 건 책이다.

책은 수용자별로 인당 5권씩 가지고 있을 수 있고, 다 읽은 책은 내보내고 새 책을 받을 수도 있다.

꽤 많은 수형자가 구치소에서 다독가로 변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부에서 입금해 준 영치금을 가지고 구치소 매점에서 물건을 사는 방법도 있다.

물론 군대나 학교 PX처럼 매점 출입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교도관이 방으로 넣어주는 신청서에 표시해

교도관에게 제출하면 구매해 가져다주는 방식이다.

참기름, 김, 마가린, 고추장, 김치, 참치, 떡갈비, 콜라, 우유 등이다. 과자 종류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두바이 쫀득쿠키까지 바라는 게 아니니, 한국 대표 과자인 초코파이와 새우깡은 있으면 좋겠다 싶긴 하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수용 생활의 본질 아닐까.

밖에서는 당연한, 사소한 선택들이 안에서는 철저하게 박탈되는 것.

누구는 담배를, 누구는 혀가 데도록 뜨거운 카푸치노를 그리워한다.

일과 취미생활을, 친구들과 가족들을 그리워한다.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여기 오지 않겠다’는 독한 결심을 하게 된다.

엠앤엠이 먹고 싶다고 울먹이는 다 큰 어른을 보며, 말없는 응원을 보내본다.

부디 이 과정을 끝까지 잘 견뎌내고, 남은 평생은 밖에서 보내기를. 엠앤엠을 맘껏 사먹으면서.

 

서아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