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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손으로 글씨를 쓴다는 것은

by maverick8000 2026. 3. 26.

 

 

 

 

 

새 연필과 새 공책도 설레지만 내가 기억하는 새 학기의 진짜 풍경은 문방구에서 '견출지'를 사는 것이었다.

빨갛고 파란 테두리의 하얀 스티커에 학년과 반, 이름을 적어 학용품에 붙이는 일은 새 학기의 의식이었다.

영 내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명필이던 아버지에게 펜과 견출지를 들고 찾아가 이름을 써달라고 졸랐다.



이제는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가 가득 써 주셨던 내 이름들을 추억한다.

하지만 요즘 견출지를 아는 학생은 드물다.

학부모들의 새 학기 필수품은 온라인에서 주문하면 하루 만에 배송되는, 아이들의 이름이 잔뜩 인쇄된 스티커다.



아버지의 손글씨가 채우던 자리를 빠르고 편리한 인쇄 폰트가 대신하는 시대다.

비단 이름표뿐일까. 공책 대신 태블릿PC가 책상을 차지하며 교실에서 손글씨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는 손글씨의 가치를 다시 조명한 연구가 실렸다.

타이핑 대신 손글씨를 쓸 때 뇌의 학습과 기억 중추가 훨씬 더 활성화된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일찍부터 디지털 교육을 도입했던 노르웨이에서는 연필 쥐는 법조차 모르는 아이들이 늘어나며

다시 손글씨 교육을 의무화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미국 뉴저지주도 학교에서 필기체 교육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과학의 관점으로 볼 때 손글씨는 아이들의 인지 발달을 위한 필수적인 '운동'이다.

하지만 이러한 효용을 떠나서라도 손글씨를 잃어버리는 것은 못내 아쉽다.

논문에도 언급됐듯 손글씨는 '연애편지나 시, 하다 못해 식료품 목록을 적을 때도 쓰이는 우리의 유산이자

인간다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는 시대다.

모양새만 놓고 보면 반듯하게 인쇄된 스티커를 이기기 쉽지 않다.

하지만 펜을 쥐고 꾹꾹 눌러쓴 글씨에는 그 사람의 고유한 숨결과 온기가 남는다.

사람의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세상에서 마지막까지 서로를 위로하는 것은 결국 이 수고스럽고

비효율적인 인간다움이 아닐까.



출처 : 매일경제신문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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