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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착각

by maverick8000 2026. 3. 30.

 

 

 

지난겨울, 추위에 파카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가는데 자꾸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내가 길을 막고 있나 싶어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여러 번 돌아보다가 사실은 지퍼 손잡이가 달그락대는

소리가 막힌 모자로 인해 증폭돼 발소리처럼 들린 것임을 알았다.

 

동네 작은 공원의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멀리 미끄럼틀 위에서 빨간 옷을 입은 젊은 여성과 베이지색

파카에 모자를 쓴 남성이 미끄럼틀 양쪽 지지대에 매달려 논다.

가까이 가서 보니 미끄럼틀 양옆에 아이들이 떨어지지 않게 막아둔 반투명의 볼록 유리와 맞은편

미끄럼틀 계단의 붉은 기둥이 서 있을 뿐이다.

나무에 가린 비스듬한 각도에서 보아 얼핏 사람으로 잘못 보았던 거였다.

 

미국 뉴저지의 어느 공원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길옆 작은 관목 울타리 앞에 검은 강아지 한 마리가 모로 누워 쓰러진 채 네 발을 허공에 대고

버둥대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다가가 보니, 검은 비닐봉지가 가지 끝에 모로 걸려 바람을 머금은 채

동그랗게 부풀어 펄럭이고 있는 거였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갓진 시골 도로 위에 낙엽이 굴렀다. 차를 몰고 지나는 순간 어린 새 한 마리가 길 위에서

날지도 못하고 파닥이고 있었다. 내 눈이 그 어린 몸짓을 발견했을 때는 차가 그 위를 지나간 뒤였다.

길가에 차를 급히 세우고 그 자리로 뛰어가 보았더니, 어제 내린 비에 젖은 낙엽이 바람에

곧추서서 흔들리고 있던 거였다.

 

멀리서는 꼭 진짜 같았는데, 다가가서 보면 엉뚱한 물건이다. 듣기만 하고 틀림없는 사실로 여겼지만,

실상을 알고 나자 허망해진다. 그래도 이런 것은 선한 마음에서 나온 착각이었다.

내 눈과 귀로 직접 듣고 본 것도 믿기 어렵기가 이와 같으니, 한 다리 건너 들은 이야기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옛사람의 글에 비슷한 얘기가 나오길래 또 혼자 웃었다.

‘칠십리설기(七十里雪記)’는 1762년 12월 22일, 이덕무(1741∼1793)가 충주로 가는 이부(利富) 고개를

넘을 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70리 길을 가는 내내 그치지 않던 광경을 묘사한 아름다운 기행문이다.

 

풍경에 취해 눈길을 가던 이덕무의 눈에 아득한 들판 저편으로 난데없는 강물과 안개가 피어오르는

광경이 나타났다. 돛대의 모습까지 그 사이로 언뜻 비쳤다. 그뿐인가?

도롱이에 삿갓 쓴 노인은 잡은 물고기를 들고 낚싯대를 끌며 가고, 마을 어귀에는 청둥오리 떼가

때맞춰 날아올랐다. 건너편 능수버들 숲에는 햇볕에 말리려 널어둔 고기 그물까지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리 따져봐도 그쪽은 큰 강물이 있을 리 없는 두메산골이었다.

마부에게 묻자 그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 한다. 옆에 있는 나그네에게 다시 물으니

그는 아무 대답 없이 빙그레 웃기만 한다.

 

한참을 더 앞으로 나아가자 풍경의 실체가 곧 드러났다.

저물녘 강과 안개는 황혼이 어둠으로 변해 가며 빚어낸 빛의 환영(幻影)이었고, 돛대의 그림자는

허물어진 집이 여름철 장마를 겪고 나서 지붕을 이지 않아 기둥만 선 채로 있어 그리 보인 것이었다.

낚싯대를 둘러멘 촌노인은 사냥꾼이 물고기가 아닌 꿩을 꿰차고 가던 모습이며, 낚싯대라고 보았던

것은 그가 짚고 있던 지팡이였다.

청둥오리 떼도 사실은 배고픈 갈까마귀 떼였으며, 고기 잡는 그물은 가로세로 얼키설키 얽은 집

울타리에 눈이 쌓여서 그렇게 보인 것이었다.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화가 급전직하 궁벽진 산골의 가난하고 적막한 풍경으로 내려왔다.

 

박지원이 요동의 어느 촌마을을 지날 때 일이다.

벽 사이로 간드러지고 애교 넘치는 꾀꼬리 소리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틀림없이 절세미인일

것으로 단정한 그는 그녀의 모습을 보려고 짐짓 담뱃불을 빌린다는 핑계로 그 집 부엌으로 들어갔다.

쉰 살이 넘은 험상궂고 우악스러운 부인이 창문 앞 걸상에 대장부처럼 떡 버티고 앉아 있었다.

실망하던 차에 주렴 안에서 한 처녀가 나온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보자, 역시 우악스럽고

사납기 짝이 없다. 의자에 앉아 밥을 먹는데 밥그릇을 든 채 젓가락으로 퍼넣듯 들이붓는다.

목덜미에는 계란만 한 혹까지 달려 덜렁거렸다.

그렇게 해서 목소리만 듣고 꿈꾼 절세미인의 환상이 왕창 깨졌다. ‘열하일기’ 속에 나오는 한 삽화이다.

 

도처에 그럴 법한 풍문이 떠돈다. 사실로만 믿고 열심히 퍼 나르다 정신을 차려 보면 절세미인이 아니라,

목 뒤에 물혹이 덜렁덜렁하는 우악스럽고 사나운 인상의 여인일 뿐이다.

바람 든 비닐봉지를 쓰러져 길바닥에 드러누운 산 짐승의 발버둥으로 잘못 본 것도 머쓱하다.

배고픈 갈까마귀를 청둥오리 떼로 착각한 것도 민망하다.

 

풍경의 착각은 사실을 알고 나면 그만이지만, 근거도 없이 무책임하게 내뱉은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

진실이 아닌 것을 우김질하면 반드시 피해를 보는 측이 생겨, 도의적·법적 책임이 뒤따른다.

내 눈이 틀림없이 보았는데도 실상은 아주 딴 물건이다.

남이 진짜라고 장담해가며 한 얘기도 알고 보면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다.

책임을 물으려 하자 나쁜 뜻이 없었고, 자신도 피해자라며 발뺌한다. 그러나 그런가?

 

인공지능(AI)이 천연덕스레 거짓말을 해도 분간을 못 하고 보면 농락당하는 세상이다.

너무 그럴 듯한 것은 오히려 의심부터 하게 만든다. 학술지에 투고한 논문 수가 확 늘고, 참고 문헌 중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AI가 만들어낸 책과 논문이 버젓이 올라 당혹스럽다는 학회 관계자의 말을 들었다.

내가 듣고 본 것은 과연 사실인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진실인가?

 

정민 한양대 국문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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