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을 어떻게 해결할까. 도서관을 나와 차를 끌고 흥업으로 돌아갈 때면 늘 비슷한 생각을 한다.
라디오에선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해는 조금 길어졌고 인근 공단에서 빠져나온 차량의 불빛이 길게 줄을 잇고 있다.
몇 미터를 가지 못하고 멈추기를 반복하는 차 안에서 오늘 하루 수고한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면
우울해진다.
도로변에 피어 있는 봄꽃을 만나도 마음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나저나 저녁은 어떻게 때울까.

흥업성당 골목길에 주차한 뒤 식당의 뒷마당 허공에다 꽃을 피운 수령 깊은 벚나무 아래에서
담배에 불을 붙인다(끊어야 하는데…).
가로등 불빛을 품에 안은 벚꽃들은 화사한데 그 아래의 그늘은 서늘하다.
불빛이 미치지 않는 담장 옆의 목련은 왠지 무섭기까지 하다.
개도 무서운가. 개집 속의 개는 목만 내민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뒷마당을 지나 큰길로 나서니 온통 벚꽃 물결이다.
원주와 붙어 있는 자그마한 마을이 그나마 가장 환해 보일 때가 이즈음인데 내 마음은 차가운
봄비를 맞은 것만 같으니 대체 무슨 까닭일까.
하기야 내가 내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날이 과연 오겠는가도 의심스러우니 그냥 배나 채우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한식 뷔페식당은 저녁을 먹으려고 찾아온 사람들로 붐빈다.
둥근 접시에 밥과 두부조림, 감자볶음, 잡채, 계란말이, 멸치를 담는다. 종류는 많은데 어느 날부터
같은 반찬을 선택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작은 접시에는 돼지고기볶음과 쌈장, 마늘, 깻잎,
열기 구이를 올린다. 그리고 숭늉 한 그릇. 자리는 냉장고와 술 상자가 쌓여있는 구석이다.
한 수저, 한 젓가락씩 음식을 입에 넣고 씹으며 사람들을 살핀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 가족들, 대학생들, 회사원들, 나처럼 혼자인 남자들과 여자들….
말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밥을 먹는 사람들,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하며 쌈을 싸는 사람들,
다 먹은 뒤 후식으로 과일을 담아오는 사람들, 사람들…. 저들은 왜 집에 가서 저녁을 먹지 않는 걸까.
나처럼 며칠을 먹던 찌개가 동이 난 걸까.
힘든 일을 마치고 함께 저녁을 먹는 것으로 하루를 정리하려는 걸까. 음식을 요리하는 게 피곤해서일까.
아니면 집에서 멀리 떨어진 현장에서 객지 생활을 하는 것일까. 다들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벚나무 꽃잎이 바람에 어룽거리는 창 앞에 앉은 중국인 학생 커플은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알 수가 없다.
아, 맞아! 바로 옆 밥보다 과일을 더 많이 먹는 저 무표정한 여자는 지난겨울 내 앞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그때는 어둠이 일찍 찾아왔고 창문 너머로 눈보라가 흘러갔었지.
그때 나는 소주를 함께 마시며 창문 밖의 벚나무가 꽃을 피우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며 취해갔었지.
그 겨울에서 이 봄으로 건너오며 나는 어떤 꿈을 꾸었을까.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식당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전쟁 소식이 궁금한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핸드폰 화면을 터치하거나 넘긴다. 나도 대충 따라 하다가 그만둔다.
저녁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난다. 남은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고무줄을 연결한 출입문이 열리면 벚꽃잎이 들어오고 사람들은 나간다. 지난겨울에는 눈송이가 들어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제 더 이상 식당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은 없을 것이다.
과일을 즐겨 먹는 여자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도 덩달아 일어난다.
밤의 거리로 바람이 불고 꽃잎이 날린다. 그새 어둠은 조금 더 깊어졌다.
터미널 같은 식당에서 나온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다. 그 여자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뒷마당의 벚나무 아래로 간다. 역시 바람이 불고 눈발 같은 꽃잎이 날린다.
고개 들어 나무를 쳐다보니 우듬지에 새집 하나가 보인다.
이번 봄에는 어떤 새가 저 둥지에 자리를 잡고 알을 낳을까. 알에서 깨어난 새는 무슨 노래를 부를까.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고(줄여야 하는데…) 상복을 입은 듯한 무수한 목련을 슬쩍 바라본다.
차로 돌아와 시동을 켜니 세상의 모든 음악은 끝나지 않았고 알 듯 모를 듯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김도연 소설가
[출처: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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