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서울대가 개교했을 때 “삼면이 바다인 나라가 살 길은 배 만드는 기술뿐”이라며
의기투합한 청년들이 있었다.
가르칠 교수도, 공부할 원서 한 권도 귀하던 시절 그들은 서로가 선생이자 학생이 되어 책을 읽고
토론하는 ‘윤강(輪講)’으로 학문의 기틀을 닦았다. 서울대 조선공학과 1회 졸업생들이다.
그 중심에 섰던 인물이 조필제 전 동서식품 부회장이다.
동창회 명칭을 “우리가 만든 배를 바다에 띄우는 날을 꿈꾸자”며 진수회(進水會)라 지은 사람도 그다.
그가 101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졸업 후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해 국내 최초의 철강선 ‘한양호’를 준공하며 꿈을 펼쳐나갔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당시 조선소는 수익성이 나빠 월급이 두세 달씩 밀리기 일쑤였고,
아내와 자녀들은 냉방에서 끼니 걱정까지 해야 했다.
보다 못한 장인이 “삼성에서 공장을 계획한다니 그 곳으로 옮겨달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몇 달을 버텼지만 결국 장인의 꾸중까지 듣고서 조선소를 떠났다.
▶삼성 제일모직으로 옮긴 그는 국내 최초의 소모 방직 공장 건설을 주도했다.
이어 한솔제지의 신문·교과서 용지 공장을 지었고, 제일제당을 거치며 부산의 제분, 김포의 조미료,
인천의 제당 공장 등 먹거리 산업의 기틀을 다졌다.
한 사람이 배와 섬유·종이·식품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다양한 국가 기간 산업의 현장을 일궈낸
사례는 흔치 않다. 한 사람이 열 명 몫을 해내야 했던 우리 산업화의 한 측면을 상징한다.
▶그를 ‘커피믹스의 아버지’로 만든 것은 1970년대 동서식품 시절이다.
출발은 품질 관리 담당 직원의 아이디어였다. 커피와 설탕, 프림을 한데 섞어 ‘한 방에’ 타서 마시게
하자는 발상은 세계 최초의 일체형 커피믹스 탄생으로 이어졌다.
1초라도 아끼려는 ‘빨리빨리’ 문화의 한국인에게 이 작은 봉지 커피는 그대로 히트를 쳤다.
2022년 봉화 광산 사고 당시 고립된 광부들이 커피믹스에 의지해 9일을 버텨낸 일은 이 제품이 가진
또 다른 생명력을 보여줬다.
커피믹스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외국 관광객들 사이에 선풍적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의 회고록 제목은 ‘사막에 닻을 내리고’이다.
그 제목처럼 그의 삶은 불가능에 도전해 온 우리 산업화를 잘 보여준다.
커피믹스 한 잔에 한때 가족의 끼니를 걱정하며 청춘의 꿈을 굽혀야 했던 한 엔지니어의 눈물과 열정이
녹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가 꿈꿨던 조선 왕국이 이뤄진 오늘, 대한민국호의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그가 안식에 들길 기원한다.
출처 : 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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