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내가 모르는 나

by maverick8000 2026. 10. 3.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들쥐’는 3년간 은둔생활을 하다 하루아침에 신분을 빼앗긴

소설가 제문재(류준열 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름도 얼굴도 똑같은 누군가는 바깥세상에서 문재의 행세를 하며 돈, 인간관계, 소설가라는 직업까지

그의 삶을 통째로 훔쳐간다.

빈털터리가 돼 집에서 쫓겨난 문재는 그제야 자신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깨닫고 사채업자 노자(설경구 분)와

함께 의문의 존재를 쫓는다. 매회 궁금증을 자아내는 긴박한 추적극은 지난 8월 말 공개된 지 2주 만에

전세계 넷플릭스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본 비영어 쇼 부문 1위를 차지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서사의 큰 줄기는 인생을 빼앗아간 누군가를 향한 복수이지만,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키워드는

‘진짜’와 ‘가짜’다.

손톱을 먹은 들쥐가 사람이 되어 인간 행세를 한다는 전래동화를 모티브로 한 만큼 등장인물들은 반복해서

문재에게 “네가 진짜 제문재가 맞느냐”고 묻는다.

문재는 “대체 내가 나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느냐”며 답답함에 몸부림치고, 노자는 그런 문재를

꾸짖듯이 소리친다.

“(증명은) 남이 해줘야지!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는 나보다 남이 더 잘 아니까. 그런데 너는 왜 그게 안 되는데!”



어느 날 주민등록증이나 입학기록처럼 서류로 나를 증명할 수 있는 데이터가 모두 사라진다면

나는 무엇으로 나임을 주장해야 할까. 노자는 그 답이 타인에게 있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대사인데, 내게는 드라마 속 반전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갈수록 개인화되고 파편화되는 사회 속에서 나의 기준, 나의 선호, 나의 내면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메시지에 익숙해진 탓일까.

‘진짜 나를 아는 것은 타인’이라는 날카로운 외침이 마치 처음 듣는 언어처럼 생경하게 느껴졌다.



물론 나 자신을 알려고, 이해하려고 가장 노력하는 사람은 나 자신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문재는 고등학교 동창을 찾아가 ‘자신이 진짜’라고 호소하다가 동창이 모두 기억하던 중요한 사건을

본인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심지어 그 사건은 문재 자신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건으로 밝혀진다.



기억은 늘 선택적이고 주관적이다. 자신이 스스로를 정의하고 판단하는 잣대도 마찬가지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액자에는 늘 메울 수 없는 빈틈이 있다.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단 한 번의 삶’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김 작가는 머리를 바닥에 대고 거꾸로 서는 요가 동작을 한창 연습하던 중, 미용실에 갔다가 정수리가

빨갛게 부어올랐다는 말을 듣는다.

김 작가는 미용사들을 ‘내가 절대로 볼 수 없는 부분을 보아주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아주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아니더라도 내가 모르는 나를 알고 있는 이들이다.



“세상에는 나를 대신해서 나를 보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나의 어떤 면을 문자 그대로 보고,

생각하고, 이해한다. 그리고 관계를 지속한다. 물론 나도 나를 보기는 한다. 그러나 셀카를 찍듯이 본다.

자주 보이는 면을 괜찮게 보이는 각도로 본다.”



산문집에서 이 구절을 읽고 스마트폰을 열어 사진 앨범을 넘겨봤던 기억이 난다.

셀카는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손의 모양이나 팔의 길이 때문에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모습이 한정돼 있긴 하지만,

그 좁은 앵글 안에서도 나는 습관처럼 비슷한 각도로 얼굴을 틀고 비슷한 표정을 짓는다.

내 정수리를 볼 수 있는 사람, 내 옆모습을 보아주는 사람이 사실은 훨씬 더 다양한 내 표정을 알고 있을 테다.



요즘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친구처럼 여기고, 사람보다 AI와의 대화를 더 편하게 여기는 이들도 많아졌다.

AI 앞에서는 사회적 신분을 내려놓고 솔직할 수 있으니 그것이 진정한 내 모습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거짓 답을 내놓고, 사용자에게 과도하게 동조하는 AI가 ‘진짜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들쥐’ 드라마에서 노자는 신분을 뺏기고 이름 없이 죽게 생겼다며 한탄하는 문재에게 이런 훈계도 한다.

 

“이름은 살아 있을 때 필요한 거야.” 다르게 말하면, 이름은 누군가 불러주기에 필요하다.

인생을 살며 누군가에게 기억되기 위해 필요하다.

나는 나의 진짜 모습을 다 알지 못하기에, 결국 우리는 서로가 필요한 것이다.

 


박상은  국민일보 기자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고 있다는 착각  (0) 2026.10.03
집요한 새치기  (0) 2026.10.02
시진핑 간판  (0) 2026.09.30
왼손이 하는 일  (0) 2026.09.30
꼰대 눈물샘 폭발시킨 '인턴'  (0) 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