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컵 기간 일본 대표팀이 경기를 마친 후 라커룸을 깨끗이 청소하고 떠났다는 뉴스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일본 응원단이 관중석을 청소하는 장면이 덩달아 해외 토픽을 장식하기도 했다.
워낙 공공장소나 거리 풍경이 깨끗하기로 소문난 청소 선진국 일본이지만, 특히 연말이 되면
나라 전체가 청소로 들썩이는 인상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일본에서는 ‘오미소카(大晦日)’라고 부르는 12월 31일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중요한 세시(歲時)인데,
이즈음에 가장 중요시되는 연례 행사가 바로 대청소다. 하루 날을 잡아 마치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한 해의 묵은 때를 벗겨내는 대대적인 청소를 하는 것이 각 가정이나 학교, 회사 사무실, 영업장 등의
연말 풍속도다.
일본의 연말 대청소 풍습에는 주술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일본의 전통 신앙에서는 각종 신(神)들이
오미소카날에 새해에 머무를 집을 찾아 나선다고 하는데, 지난해의 묵은 때가 남아있는 집에는
길운(吉運)을 가져다주고 안전을 지켜주는 수호신들이 들어가기를 꺼려하므로 집 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아 좋은 신을 맞이해야만 무사히 한 해를 지낼 수 있다는 일종의 정령(精靈) 사상이 연말
대청소의 유래로 알려져 있다.
유래야 무엇이건 한 해를 대청소로 마무리하는 풍습 덕분에 일본에서는 어디를 가나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으로 새해를 시작한다. 청소가 단지 육체적 행위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을 정갈히 하거나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낯설겠지만 한국도 80년대까지는
연말 대청소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고, 언론 등에서 의식적으로 캠페인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기 전에는 귀찮아도 막상 하고 나면 어딘가 뿌듯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었던 연말 대청소
추억이 아스라하다.
역병, 전쟁, 경제난, 이태원 사고 등 시련이 많았던 한 해를 보낸 탓인지 올 연말은 대청소라도 해서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고픈 심정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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