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이 “결혼하지 않겠다”며 찍은 비혼식(非婚式)을 유튜브에서 봤다.
예복을 잘 차려입은 청년이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혼자 행복하게 살겠다’고 쓴 비혼 선언문을
낭독하자 또래인 하객들이 박수로 축하했다. 청첩장 대신 비혼식 초대장을 받아 든 기혼 친구들은
“축의금을 받기만 하고 돌려주지 못하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라고 했다.
▶결혼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 연예·오락·일상·언어 등 곳곳에서 변화가 감지된다.
K팝에선 ‘걸그룹=사랑노래’ 공식이 이미 깨졌다. 얼마 전 새 앨범을 낸 걸그룹 ‘드림캐쳐’는
신곡 ‘비전’에서 ‘사막보다 메마른 이곳의/(중략)/ 그 갈라진 땅 위 그 틈에/ 깃발을 세우고 맞서 싸워’라고
노래했다. 사랑 노래에서 환경보호·독립적인 삶 등으로 관심이 옮겨가는 젊은 여성 팬의 취향 변화를
반영했다고 한다. 비혼 남녀의 일상을 관찰하는 TV 예능, 비혼으로 사는 노하우를 담은 유튜브
영상도 인기다.
▶변화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말 통계청 발표에서 19~34세 청년 중 연애 경험 있다는
응답은 65%였는데, 이 중 70%가 자발적으로 ‘솔로’를 택했다고 했다. 청춘남녀의 이성교제 비율은
1991년 53%에서 2021년 29%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결혼 건수는 지난 10년간 41%가 줄어
거의 반 토막 났다. 그사이 ‘노총각’ ‘노처녀’라는 말은 거의 사라진 사어(死語)가 됐다.
▶기업 복지도 이런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5대 그룹 중 처음으로 지난해 비혼 지원금 제도를 도입한
LG에서 2일 첫 비혼 선언 직원이 나왔다. 이튿날엔 2·3호 선언도 이어졌다. 이들은 결혼 축하금과 같은
금액의 지원금과 5일의 유급휴가를 받는다. 기업이 비혼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사내 복지 형평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다른 기업들도 비혼자를 위한 복지를 속속 내놓고 있다.
무료 건강검진 대상을 ‘본인과 배우자’에서 ‘본인과 가족 1인’으로 바꾸고 반려동물 수당을 신설한 곳도 있다.
우수 인재를 확보하거나 유출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한다.
▶비혼 확산이 자기애 강한 젊은이들의 쿨한 선택인 것만은 아니다. 통계청 조사에서 비혼을 택한
이유를 봤더니 ‘결혼자금 부족’과 ‘고용 상태 불안’ 등 경제적 어려움이 40%를 넘었다.
‘혼자 사는 게 좋아서’는 20%에 불과했다. 직장 못 구해 좌절하고 월급으론 내 집 마련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청년들이 ‘결혼은 중산층 이상의 문화’라고 한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출처 : 조선일보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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