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거기에 늘 있던 나무 / 윤재철
그 화사했던 보랏빛 꽃만 보았다
그 눈물 나던 진한 꽃향기만 보았다
나무는 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가을 햇빛 어깨를 쓸어내리는
오래된 골목길 안
문득 라일락나무를 본다
처음부터 거기에 늘 있던 나무
이제는 윤기를 잃어버린 하트 모양의 잎과
꺼풀이 이는 가지
누렇게 말라붙은 꽃자리
그러나 이제사 절망을 이름붙이지 못한다
단지 내가 보았을 때도
보지 않았을 때도
늘 거기에 있던 나무
처음부터 아무 의심없이
거기에 늘 있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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