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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詩와 글과 사랑

20년 후에, 지(芝)에게 / 최승자

by maverick8000 2025. 9. 1.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20년 후에, 지(芝)에게  /  최승자

 

지금 네 눈빛이 닿으면 유리창은 숨을 쉰다

지금 네가 그린 파란 물고기는

하늘 물 속에서 뛰놀고 풀밭에선

네 작은 종아리가 바람에 날아 다니고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빈 벌판에서 차갑고도

따스한 비를 맞고 있는 것 같지

눈만 뜨면 신기로운 것들이

네 눈의 수정체 속으로 헤엄쳐 들어오고

때로 너는 두 팔 벌려

환한 빗물을 받으며 미소짓고

이윽고 어느 날 너는 새로운 눈을 달고

세상으로 출근하리라

많은 사람들을 너는 만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네 눈물의

외줄기 길을 타고 떠나가리라

강물은 흘러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너는

네 스스로 강을 이뤄 흘러 가야만 한다

그러나 나의 몫은 이제 깊이 깊이 가라앉는 일. 봐라,

저 많은 세월의 개떼들이 나를 향해 몰려오잖니,

흰 이빨과 흰 꼬리를 치켜들고 푸른 파도를 타고 달려오잖니.

물려 죽지 않기 위해, 하지만 끝내 물려 죽으면서,

나는 깊이 깊이 추락해야 해

발바닥부터 서서히 꺼져 들어가며, 참으로 연극적으로 죽어가는 게 실은 나의 사랑인 까닭에.

그리하여 21세기의 어느 하오,

거리에 비 내리듯

내 무덤에 술 내리고

나는 알지

어느 알지 못할 꿈의 어귀에서

잠시 울고 서 있을 네 모습을,

이윽고 네가 찾아 헤맬 모든 길들을,

—가다가 아름답고 슬픈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동냥바가지에 너의 소중한 은화 한 닢도 기쁘게 던져 주며 마침내 네가 이르게 될 모든 끝의 시작을!

-20년 후에, 지(芝)에게, 최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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