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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詩와 글과 사랑

노각 / 유종인

by maverick8000 2025. 10. 21.

 

 

 

 

 

노각  /  유종인

 

노각이란 말 참 그윽하지요

한해살이 오이한테도

노년이 서리고

그 노년한테

달셋방 같은 전각 한 채 지어준 것 같은 말,

선선하고 넉넉한 이 말이

기러기떼 당겨오는 초가을날 저녁에

늙은 오이의 살결을 벗기면

수박 향 같기도 하고

은어(銀魚) 향 같기도 한

아니 수박 먹은 은어 향 같기도 한

고즈넉이 늙어와서 향내마저 슴슴해진

내 인생에 그대 내력이 서리고

그대 전생에 내 향내가 배인 듯

아무려나

서로 검불 같은 생의 가난이 울릴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붓한 집 한 채 지어 건네는 맘

사랑이 그만치는

늙어가야 한다는 말 같지요

노각이란 말 늡늡하지 않나요

반그늘처럼 늙어 떠나며

외투 벗어주듯 집도 한 채

누군가에게 벗어줄 수 있다는 거

은어 향에 밴 수박 향서껀

늦여름 거쳐 가을 허공이든

그대 혀끝이나 귓불에 스친 우박이든

저물지 않는 말간 상념의 맛집

내 욕심을 늙히어 그대에게

집 한 채 물려주고 가는 맛 같은

노각이라는 말 낙락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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