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연애 리얼리티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즐겨보는
것은 ‘환승연애’다. 헤어진 연인 다섯 쌍이 한 집에서 서로 관계를 모르는 채 살게 한다.
새로운 사람과 데이트하고, 마지막에는 전 연인에게 돌아갈지 새 인연을 택할지 결정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이 제일 응원하는 건 용감하게 전 연인을 붙잡는 출연자도, 새 연인을 향해
직진하는 출연자도 아니다.
동방예의지국답게 전 연인에게 예의를 지키는 사람이 가장 높게 평가받는다.
반대로, 미련이 있고 없고를 떠나 ‘전 연인에게 예의 없이 대하는 사람’이 가장 욕을 먹는다.
이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한다.
변호사와 의뢰인의 계약 관계가 끝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약정한 업무 범위를 다한 경우 말고도,
의뢰인이 약정한 보수를 못 주거나 밀리거나, 의뢰인이 파산하거나, 변호사가 이직 또는 사직하거나,
당사자가 사망하기도 한다. 사건 방향이 달라 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하기도 하고, 변호사의 업무
수행에 만족하지 못한 의뢰인이 해지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른바 ‘전관 파워’를 믿는 의뢰인들은, 담당 검사나 재판부가 바뀌면 그때그때 판검사와 연줄이 있는
변호사를 찾아 철새처럼 떠나기도 한다.
변호사와 의뢰인 관계도 마치 연애처럼, 시작만큼이나 마지막이 중요하다.
행운을 빌어주며 평화롭게 헤어진 관계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다.
변호사에게 중요한 건 당연히 보수다. 정당히 수행한 업무에 대해 이런저런 트집을 잡으면서
수임료를 떼어먹으면 안 된다. “일부라도 패소하면 수임료 전액 돌려주시기로 했잖아요” 같은
말도 안 되는 생떼를 몇 번 당한 이후 난 의뢰인과 한 대화를 녹음하기 시작했는데, 굳이 이래야
한다는 사실이 참 슬프다. 변호사에게는 시간과 문서가 곧 돈이다.
그 사실을 알아주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고생하셨다고 한마디라도 예쁘게 해 주는 의뢰인은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나중에 새로운 의뢰가 오면 이전보다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변호사 또한 도리를 지켜야 한다. 업무가 끝났다고 의뢰인의 전화와 메일을 차단해 버리고
나 몰라라 하는 건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새로운 변호사가 사건 기록을 요구할 수도 있고,
사건 진행 상황을 정리해 달라고 수도 있다. 계약상 의무는 없지만, ‘의뢰인과 맺은 신뢰’를 생각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는 일이다. 사임계를 제출하기 전에 또는 제출한 후에 날아오는 우편물을
전달해 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송사는 정한 기한을 놓치면 치명적이기 때문에, ‘전 의뢰인’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만날지 모르는 게 인연이다.
가장 깊은 비밀까지 공유했던 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는 특별하다.
이별할 때도, 갈아탈 때도, 그 관계를 망치지 않도록 ‘환승 예절’을 잊지 말자.
서아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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