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취업 시장에서 가장 자주 들리던 자조는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였다.
코딩 한 줄 못 짜는 인문계 졸업생의 좌절을 압축한 말이었다.
그런데 요즘 캠퍼스에선 새로운 한숨이 번진다. '컴송합니다(컴퓨터공학과라서 죄송합니다)'.
취업 불패 신화를 써 내려가던 컴퓨터공학도들마저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 것이다.

AI시대 최대 수혜를 입을 전공으로 꼽혔던 컴퓨터공학과의 취업률이 눈에 띄게 하락하고 있다.
신입 개발자가 하던 기초 코딩과 문서화 작업을 생성형 AI가 빠르게 대체하면서다.
실제로 소프트웨어 개발직 채용 공고에서 신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2년 사이 16%포인트 넘게 줄었다.
'기술적 숙련도'가 곧 생존이었던 공대생들에게도 실존적 고민의 시간이 닥친 것이다.
문과의 최후 보루로 여겨졌던 번역·글쓰기 영역에서의 변화는 더 충격적이다.
최근 조선시대 한시를 영어로 옮기는 인간과 AI의 번역 대결에서 영문과 교수 16명 중 12명이 챗GPT의
손을 들어줬다.
AI는 단순한 단어 치환을 넘어, 유학적 맥락을 읽어내며 '하늘'을 'Sky'가 아닌 초월적 존재를 뜻하는
'Heaven'으로 번역해냈다. 문학적 감수성마저 AI의 학습 범위 안으로 들어왔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결국 공대생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이유와 문과생이 느끼는 불안의 뿌리는 하나로 연결된다.
AI가 계산이나 코딩 같은 '기능'을 넘어, 인간만의 성역이라 여겨졌던 '맥락'과 '해석'의 영역까지
집어삼키고 있다는 신호다.
이제 우리는 AI와 일자리 전쟁을 벌이기보다 그것을 어떻게 '검수'하고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AI가 지식을 대량 생산할수록, 그 지식의 진위를 가리고 가치를 부여하는 인간의 안목이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탄탄한 인문학적 소양과 논리적 비판 사고를 갖춘 이들에게 AI는 침입자가 아니라 능력을 확장해줄
비서가 될 수 있다.
'문송'과 '컴송'의 시대,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AI 자체가 아니라, AI 앞에서 질문을 멈추는 지적 종속이다.
출처 : 매일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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