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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효율성이 즐거움을 죽인다

by maverick8000 2026. 3. 18.

 

 

 

무용수에겐 자투리 시간이 많다.

리허설과 공연 사이, 가만히 있기엔 지루하고 다른 일을 시작하기엔 애매한 시간이다.

요즘이라면 다들 휴대폰을 들여다보겠지만 예전엔 뜨개질을 하는 이가 제법 있었다.

연차가 쌓인 무용수들은 예사롭지 않은 솜씨로 직접 뜬 워머를 입고 다녔고, 그들의 춤 연륜이

거기에 배인 것 같아 부러웠다.

 

나는 겉뜨기와 안뜨기밖에 할 줄 모르는 왕초보였지만 나만의 워머를 갖고 싶었다.

마침 길고 화려한 레그워머가 유행하던 시절이다.

목도리를 뜰 줄 아니까 가장자리를 이어 붙이면 레그워머가 되지 않을까?

 

실뭉치를 들고 다니며 틈틈이 뜨개질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지하상가를 지나다가 알록달록한 줄무늬 목도리를 발견했다. 당황했다.

내가 애써 만드는 것보다 저 목도리를 단돈 5000원에 사서 이어 붙이는 것이 훨씬 빠르고 싸며

완성도도 높을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레그워머는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의 뜨개질은 멈추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한 코 한 코 엮어가는 과정이

꽤 즐거웠지만 가성비를 따져본 순간 허탈했던 것이다.

 

뜨개질은 역설적인 행위이다.

편직 기술이 발달한 이후 뜨개질은 생계나 생존의 기능을 잃고 취미 및 예술의 영역이 되었다.

사람들이 비싼 실을 사서 눈이 빠지게 뜨개질을 하는 것은 즐겁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즐거움보다 효율성을 취했던 나는 저렴한 레그워머를 얻는 대신 뜨개질의 무한한 세계를 잃었다.

 

효율성의 논리로 본다면 춤도 뜨개질만큼 위험하다.

무용 전공자가 된다는 것은 수많은 시간과 노력, 돈을 들이고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비효율적인 투자이다.

취미로서의 춤은 어떤가. 춤은 분명 건강과 사교, 공동체 단합에 도움 된다.

하지만 이러한 목적은 춤이 아닌 방식으로도 달성할 수 있다.

체력 증진이 최종 목표라면 하루 아침에 춤을 그만두고 수영이나 조깅으로 바꾸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춤을 그만두는 건 춤이 열어줄 세상을 포기하는 일이다.

뜨개질이 뜨개질 자체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위해 존재하듯 춤도 마찬가지다.

 

뜨개질의 딜레마는 이제 거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춤추고 노래하고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일, 생각하고 움직이고 행동하는 일에서 기계가 인간을

앞서기 시작했다. 인간이 직접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더 효율적인 세상에서 인간에게 무엇이 남을까.

효율성에 삶의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그렇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마음이 필요할지 모른다.

 

정옥희 무용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