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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곰이 산을 넘어올 때

by maverick8000 2026. 3. 18.

 

 

 

‘캐나다의 체호프’라고 불리는 소설가 앨리스 먼로는 2013년에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는

칭호와 함께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캐나다 작가로는 처음이었고, 장편소설 중심의 서구 문학계에서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평생 짧은 소설들을 쓰기는 했지만 2009년 그에게 맨부커 국제상을 안겨준 심사위원회는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장편소설 작가가 평생에 걸쳐 쓴 소설에 담은 것만큼의 깊이와 지혜, 그리고 정교함을

작품마다 담아냈다.”

 

먼로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중편 ‘곰이 산을 넘어오다’는 일견 뻔한 불륜 이야기다.

은퇴한 교수인 주인공은 부유하고 고상한 집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지만 지난 시절 불륜을 일삼았다.

심지어 이른 은퇴 역시 학생과의 염문 탓이다.

아내와의 노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기다렸다는 듯 아내의 병이 발견된다. 알츠하이머.

남편은 양로원으로 들어가겠다는 아내의 뜻을 존중하고 아내를 극진히 보살피려 한다.

그러나 시설 적응을 위해 정해진 한 달의 면회 금지 기간을 기다려 아내를 찾았을 때,

아내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다. 대신 처음 보는 남자와 마치 연인처럼 지내고 있다.

자신의 불륜 행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은 혼란과 충격에 빠진다.

 

그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지난날 자신의 잘못에 대한 천벌이라고 받아들여야 할까?

소설은 뻔하게 시작했지만, 뻔하게 끝나지는 않는다.

인생은 복잡하고 사랑은 어렵다. 모순과 자가당착은 한순간의 역설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근간이다.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근사한 것은 잘 알려진 동요를 비튼 제목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 삶에서 언젠가는 곰이 산을 넘어온다.

곰을 만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숨어야 할까, 도망쳐야 할까, 맞서 싸워야 할까.

아니 우리는 사람일까, 아니면 곰일까.

 

문지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