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태 72 / 김영승
남들 안 입는 그런 옷을 입었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왜 으스대는가. 왜 까부는가. 왜 어깨에 목에 힘이
들어가 있는가. 왜 꼭 그렇게 미련을 떨어야 하는가.
하얀 가운을 걸치고 까만 망토를 걸치고 만원 버스를
타봐라. 만원 전철을 타봐라. 얼마나 쳐다보겠냐.
얼마나 창피하겠냐. 수녀복을 입고, 죄수복을 입고,
별 넷 달린 군복을 입고……
왼쪽 손가락을 깊이 베어
며칠 병원을 다녔는데 어떤 파리 대가리같이 생긴
늙은, 늙지도 않은 의사새끼가 어중간한 반말이다.
아니 반말이다. 그래서 나도 반말을 했다.
“좀 어때?”
“응 괜찮어”
그랬더니 존댓말을 한다. 그래서 나도 존댓말을 해줬다.
“내일 또 오십시오.”
“그러지요.”
- 시집 '권태'(책나무, 199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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